금남면 중평리서 태어난 장군 생가터 에두르는 길 조성 계획
중평리 밭두렁에 놓인 고인돌 아늑한 마을 풍경 속 명물 예감

정기룡 장군길은 하동군에서 앞으로 만들려고 계획 중인 코스입니다. 정기룡 장군이 태어난 금남면 중평마을에서 시작해 상평마을, 정기룡 장군 사당을 둘러보고 금오산을 등산하는 정도로 위치만 잡아두고 있습니다. 직접 둘러보니 중평항에서 재건중평교회 옆으로 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중평마을회관, 중평경로당을 지난 후, 중평소류지 직전에서 왼쪽으로 길을 꺾어 당산골 정기룡 생가터를 에돌아 중평리 고인돌을 만나고 다시 상촌마을로 접어든 다음 1002번 지방도를 지나 정기룡 장군 사당인 경충사로 이어지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정기룡 장군이 어릴 적 뛰어놀던 들판과 금오산 자락을 다 아우르는 코스가 되는 거죠.

◇바다는 이순신, 육지에는 정기룡

먼저 정기룡 장군이 누군지 알아야겠죠. 매헌 정기룡(1562∼1622)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큰 공을 세운 영웅입니다. 단순히 큰 공을 세웠다 정도가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에는 '바다에 이순신이 있다면, 육지에는 정기룡이 있다'고 불릴 정도로 굉장했던 분이죠. '육전의 맹호, 육상의 이순신', '임진왜란 조자룡' 같은 별명만 봐도 그렇습니다. 공을 세우면서 벼슬도 높아져 나중에는 이순신 장군처럼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통영 통제영에서 병으로 생을 마칩니다. 현재 묘소와 위패는 경북 상주에 있지만, 그가 태어난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그를 기리는 사당 경충사와 유품을 전시한 기념관이 있습니다.

2005년 하동문화원이 발행한 <하동의 구전설화>에 그와 관련한 설화가 많은데, 읽어보면 전형적인 영웅 이야기입니다.

▲ 바다를 배경으로 다닥다닥 붙어 인상적인 풍경을 만드는 중평마을 지붕들. 마을 뒤편 언덕길에 오르면 볼 수 있다. /이서후 기자
▲ 바다를 배경으로 다닥다닥 붙어 인상적인 풍경을 만드는 중평마을 지붕들. 마을 뒤편 언덕길에 오르면 볼 수 있다. /이서후 기자

"출산 때는 집 주위에 서기가 어리어 있어 동리 사람들은 정기룡을 일컬어 하늘이 보낸 위인이라 했다."

"여덟 살에 벌써 활쏘기와 창칼 쓰는 법을 터득하여 동리 아이들의 대장 노릇을 하였으니 그의 힘과 지략은 이미 이때부터 동리 아이들에 으뜸으로 손꼽히는 자가 되었다."

"동리 사람들이 말하기를 호랑이는 산신령으로 불의의 변을 당하게 된 정기룡을 구출코자 나타났으니 이 아이는 기필 장성하여 난세를 바로잡을 위인이 될 것이라 했다."

정기룡 장군의 원래 이름은 정무수였는데요. '기룡'이란 이름을 얻은 사연도 신기합니다. 무과 시험을 보러 간 그에게 선조 임금이 직접 내려준 것이라 합니다. 당시 임금이 종각에서 불을 뿜는 용이 나오는 꿈을 꾸었는데, 하도 징조가 이상해 바로 종각에 가서 무슨 일이 있는지 살펴보라 일렀더니 종각 기둥 아래 6척 거인이 누워 있더랍니다. 그게 바로 과거 보러 서울에 갔던 정기룡 장군이었지요.

"오늘 그대를 만나게 된 것은 천지신명이 가르치신 바라 몽중에 종루에서 일어서서 하늘을 나는 용을 보았으니 그대 이름을 기룡(起龍·일어서는 용)이라 지어내리는 터이니 그리 알라."

▲ 오래되어 아름다운 중평마을 골목.  /이서후 기자
▲ 오래되어 아름다운 중평마을 골목. /이서후 기자

◇중평마을 고인돌 찾기 대작전

정기룡 장군이 태어난 마을이 중평리입니다. 중평(仲坪)이란 이름은 넓고 평평한 곳이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마을 위치가 그렇다는 말이겠지요. 옛날에는 중태(仲台)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는 정기룡 장군 출생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외에 마을 앞 돌섬에서 이름이 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중평리에는 중평마을과 상촌마을이 있습니다. 두 마을은 1002번 지방도와 바다 사이 완만한 경사에 너른 들판을 두고 있지요. 중평마을은 주변 다른 마을과 비교해 제법 큽니다. 마을 뒤편 언덕길에 올라 바라보면 다닥다닥 붙은 집들의 지붕이 어찌 그리 예쁜지 모르겠습니다. 푸른색, 검은색, 주황색, 붉은색으로 크기와 방향이 각자 다른 지붕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멋진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지붕들 아래 골목마다 오래되어서 멋진 풍경들이 가득합니다.

중평마을에 유적이 많습니다. 마을 앞바다 장구섬 화석 산지는 무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데요. 공룡을 포함해 중생대 백악기 동물들의 화석이 잘 보존돼 있습니다. 특히 원시 악어 두개골 화석, 오리주둥이 공룡 이빨 화석 같은 것은 우리나라 자연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고 하네요. 이런 걸 보면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은 공룡의 왕국이었던 게 확실합니다.

▲ 금남면 유일한 고인돌로 기록된 중평리 고인돌과 그 앞 풍경. /이서후 기자
▲ 금남면 유일한 고인돌로 기록된 중평리 고인돌과 그 앞 풍경. /이서후 기자

그리고 중평마을에는 금남면에 유일한 것으로 기록된 고인돌이 있습니다. 자료를 보고 이 고인돌을 찾으려는데 아무래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을 어르신에게 물어봐도 모른다는 말뿐이셨고요. 그래서 하동군에 지원 요청을 했습니다. 이 고인돌은 비지정 문화재라서 관리가 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동군에서도 정확한 위치를 알려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정기룡 장군길 조성을 담당하는 관광진흥과 정채섭 주무관과 함께 이참에 고인돌의 위치를 제대로 찾아보자며 탐색에 나섰습니다. 중평마을 전 이장님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장님이 혹시 여긴가 싶어 데려간 곳에는 과연 고인돌이 확실해 보이는 큰 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자리에 있던 것도 아니고 받침돌 두 개와 덮개돌도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원래 고인돌이 있던 자리는 고추밭이 되어 있었고요. 땅 주인이 밭을 개간하려고 고인돌을 옮긴 게 20여 년 전이라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고인돌 자체를 잘 보관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이 고인돌을 잘 복원하면 또 다른 중평마을 명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땅 주인이 저 앞 밭두렁에도 고인돌이 하나 있다고 하시는 게 아닙니까. 따라가 봤더니 앗, 바로 기록에 나오는 '중평리 고인돌'이었습니다. 화강암으로 된 것이나 윗부분에 뚜렷이 새겨진 별자리로 봐서 확실했습니다. 드디어 그 고인돌을 찾았습니다. 여기에 고추밭에 있다 옮겨진 고인돌을 덤으로 발견한 셈이네요. 심지어 이장님께서 어릴 적에 여기저기 고인돌 같은 돌이 꽤 많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중평리 일대는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인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고인돌이 발견된 고추밭 끝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이 아늑하고 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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