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가까운 아내 옛집 작은 절 됐네
어릴 적 꿈 채웠을 거실 위 관음상에
사랑하는 맘 변치 않기를 기도드렸다

지난 일요일에는 아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에 다녀왔다. 최근에 옆집에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어서인지 아내가 흘러가는 듯 그 동네 이야기를 몇 번인가 했었다. 늦은 점심으로 국수를 먹었고, 덜어주는 대로 족족 비우는 두 딸의 그릇을 보면서 문득 그 동네를 두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키기 싫은 피곤함이 밀려와서, 커피 두 잔을 테이크 아웃했다. 그리고 고속도로를 탔다. 과속하지 않고 주행차로를 달렸지만, 금세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중소도시의 근교에 위치한 시골 마을이었다. 아마도 마이카를 부르짖던 시기에 호황기를 누렸을 대궐 같은 낡은 갈빗집이 연이어서 보였다. 그 근처 버려진 공터에 차를 세웠다. 거기에서 가느다란 골목길로 걸어 들어갔다.

버려진 집들과 화단이 가꾸어진 집들 사이를 지나서, 제법 올라갔다. 집과 집은 가까웠고, 산으로 갈수록 집은 더 가까워졌다, 다시 멀어졌다, 했다. 숲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아내가 살던 집이었다. 그 집은 어떤 스님이 혼자 불공을 드리는 작은 절로 변해있었다. 아내가 두 딸만큼 작았을 때부터 드나들었을 그곳이 궁금해서 염치 불구하고 문을 두드렸다.

이 집을 지었던 사람의 딸이라고 하니, 흔쾌히 들어오라고 말했다. 스님 앞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갓 우린 차를 마시면서, 나는 낮게 들리는 목소리보다 보이는 벽이며, 천장이며, 낡은 타일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내는 예전과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작게 속삭였다. 우리는 거실에 자리를 잡은 오래된 목조 관음상에 절을 세 번 했다. 아내는 어떤 것을 기도했을까.

옛집에서 나와 옛길을 걸었다. 한낮의 열기가 가시고 초저녁의 바람이 산을 타고 내려올 때, 우리는 버려진 공터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서우는 엄마가 살던 동네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 놀았던 것이 좋았다고 했다. 골목과 산길을 신나게 뛰어다녔던 온이는 지친 듯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내가 선곡해주는 음악을 들으면서 운전을 했다.

나는 짧은 교외 운전을 하면서 간만에 제대로 된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든 세상이 집중하는 문제라든지, 뭔가 삐거덕거리는 카페의 사정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잠시 뒤로 물러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나를 믿는 가족에게 기대고, 그런 것을 모르는 가족들은 나에게 기대는 것이 어쩌면 기억될 추억들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날씨가 더 습해지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면, 여러 가지로 우리의 상황이 달라지지 싶다. 아내는 다시 일을 시작할 것이고, 서우에게는 휴대폰이 생길 것이다. 두 딸은 요즘 엘리베이터를 스스로 타고 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방과 후에 다녀야 할 학원들을 알아보고 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우리가 심어준 꿈과 현실이 자꾸 부딪친다. 바라는 대로 키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마음을 비워도 차오르고, 비워도 또 차오른다.

체념하고 싶을 때마다, 아내를 바라본다. 내가 나를 단념했을 때, 미래에 더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나를 나보다 더 아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이 작은 침상 도시도 언젠가 한산한 어떤 공간이 되는 날이 올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옆에 앉아 있는 아내의 옆 모습을 보면 뭔가 온기 같은 것이 느껴진다.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지켜낸다면 지난 시절 우리가 어설프게 연애를 시작했던 것처럼 또 그렇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아내가 어릴 적 어떤 꿈을 꾸었을 거실에서 나는 절을 세 번 하고 기도를 했다. 특별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늙어도, 남들이 보기에 아름답지 않게 되더라도, 부디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국한된 감사가 기만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더 자주 마주하고 사랑해야지 하고 다짐한다. 마음은 쌓이게 되고, 세상으로 넘치게 되리라 막연히 믿기 때문이다. 서투른 믿음이다. 시간이 더욱 천천히 흘렀으면 하고 바란다. 막막한 나의 일상은 두 딸에게 기대어 굴러간다. 그렇게 하루가 저문다.

밤이 고맙다. 낮의 숱한 고민을 끊어준다. 내 옆에는 서우가, 그 옆에는 아내가, 그 옆에는 온이가 잔다. 걱정 없이 단꿈을 꾸는 듯하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 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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