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지역 공연예술 전망' 세미나…극단 연출가·재단 관계자, 레퍼토리 개발·유통·제작 논의
"문예회관이 관객-지역 연결하는 플랫폼 돼야" 창작 과정 지원과 기획 전문인력 필요 목소리

한국에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건 '더' 쉽지 않다. 왜냐면 예술가는 물론 문화예술시설, 제작·유통사, 관람객 모두가 수도권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을 힘들 게 하는 건 지역 예술가, 지역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 유수의 상을 휩쓸어도 전국 무대에 서는 건 어렵다. 툭 까놓고 말해 기획사는 '지방 배우·지방 작품'에 투자 하기는커녕 공연료를 싸게 받으려한다. 지역 문화예술회관 조차도 '수익성·흥행성'을 이유로 지역 작품을 기획 공연으로 올리지 않는다. 지역 예술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9일 오후 예술가와 문화재단 관계자들이 이런 고민을 나누고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경남문화예술회관은 여름공연예술축제 첫날, '지역 공연예술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유의미한 이야기나 나왔다. 한 참석자는 "정책이나 예산 결정자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끼리 이야기하고 끝나면 아무 의미가 없다"며 "오늘 나온 이야기를 모아 도지사나 도 관계자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삼우 극단 예도 연출가 "우수성·예술성 인정 받은 지역 작품에 공연 기회 줘야"

지난 2013년 거제지역 극단 예도가 경남을 넘어 서울에 진출했다. 이삼우 연출가가 직접 극을 쓰고 연출한 <선녀씨 이야기>로. 제30회 경남연극제 대상과 전국연극제 대통령상을 휩쓴 작품이다. 당시 서울 진출은 큰 화제였다. 경남연극제 대상작이 경남을 제외한 지역에서 장기 공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기획사의 러브콜을 받은 것 역시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선녀씨 이야기>는 2017년 서울서 재공연됐고 이듬해 독립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연출가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23곳에서 초청받아 90여 회 공연을 했고 7년간 초청료로 3억 1300만 원을 받았다"며 "사실 3억여 원은 작은 뮤지컬 제작 금액밖에 안 된다. 우리는 몇 년에 걸쳐 발품을 팔아 공연했지만 수익이 없는 게 현실이더라"고 말했다. 

지역의 우수한 레퍼토리 작품이 전국을 무대로 공연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문화예술연합회의 민간예술단체 우수공연 프로그램에 선정돼도 지역 문화예술회관에서 찾질 않는다. 

이 연출가는 "경남에 좋은 공연장이 있는 문화예술회관이 많음에도 솔직히 우리 작품을 홀대하지는 않은지, 오히려 우리 지역 문화예술회관이 플랫폼 역할을 하면 더 큰 힘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우수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은 지역 예술단체의 작품에 대해선 안정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9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지역 공연예술의 전망 세미나 모습. 맨 왼쪽부터 이삼우 극단 예도 연출가, 이진희 경남문화예술진흥원 대리, 박진용 공연예술박스 더플레이 예술감독./김민지 기자
지난 9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지역 공연예술의 전망 세미나 모습. 맨 왼쪽부터 이삼우 극단 예도 연출가, 이진희 경남문화예술진흥원 대리, 박진용 공연예술박스 더플레이 예술감독./김민지 기자

◇이진희 경남문화예술진흥원 대리 "단순한 활동 발표지원에서 창작 과정지원으로 바꿔야"

이진희 대리는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를 개발·유통하기 위해선 지원방식을 재정비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민간예술단체가 이렇다 할 레퍼토리로 내놓을 만한 작품을 만드는 건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제작해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유통하기를 위해선 최소 3년~5년이 걸린다. 하지만 지자체의 지원방식은 한 개 작품에 한 개 사업을 지원하는 단편적인 구조다. 또 많은 예술가들에게 지원해주기 위해 작년에 지원받은 예술단체를 올해는 제외하는 때도 있다. 일회성으로 작품을 만들고 올리다 보니 연속성과 발전 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대리는 "창작과정을 단계별로 나누어 유망예술작품 발굴지원, 우수공연 재공연 지원, 레퍼토리 사업화 지원 등으로 구분하여 신진-중견-우수 단체들에게 맞는 예술지원체계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경남지역 작품을 제대로 평가하고 알리는 비평가 그룹을 키우고 "대중이 누구나 즐기고 관심 가질만한 온라인 콘텐츠를 개발, 유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진용 공연예술박스(BOX) 더플레이 예술감독 "일회성 아닌 레퍼토리 공연 필요"

진주에 있는 공연예술박스 더플레이는 지난 2016년 만들어진 신생 단체다. 청년 예술가들이 지역 콘텐츠를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을 만든다. 지난해 진주기생들의 독립만세운동을 주제로 한 뮤지컬 <의기>를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박진용 예술감독은 "지역 콘텐츠를 발굴해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지역 예술단체의 큰 장점"이지만 "인적 인프라·연습 공간·예산이 부족하고 지역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도 단순히 '고생했어'라고 말하고 끝나는, 지역 작품에 대한  (호의적이지 않은)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신생 단체로서 지역에서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개척하는 단체로서 그간 어려운 점을 이야기했다. 민간극장을 보유하지 않은 이상 적자 경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 지원 사업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 등이다. 

박 감독은 "현재 지원이 단발성이다 보니 새로운 작품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며 "예술단체가 더 안정적으로 창작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작품을 무대에 올려 고정 레퍼토리로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정 극단 상상창꼬 연출가 "작품의 다양성 인정해줘야"

지난 2014년 창단한 마산지역 극단 상상창꼬는 정통극 공연이 대부분인 경남에서 신체극(Physical Theatre·피지컬 씨어터)을 선보이는 극단이다. 특히 작품 <후에>는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가족 동반자살 사건을 모티브로 했으며 새가 되고 싶었던 주인공 '류'의 성장 이야기다. 2015년 몽골 세인트 성 뮤즈 국제연극제 연기상,  2019년 루마니아 바벨국제공연예술축제 무대미학상, 대한민국연극제 네트워킹 페스티벌 개인상·단체상 등을 받았다. 올해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의 민간예술단체 우수공연 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 

김소정 연출가는 신체극의 창작과정과 훈련과정, 해외 공연 성과 등을 이야기하며 "새로운 형식에 의구심을 가지기보단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간 힘들었던 점도 토로했다. 김 연출가는 "작품 <후에>가 민간예술단체 우수공연 프로그램으로 선정됐지만 지역 문화예술회관들이 저희 작품을 선호하지 않아 공연을 못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일주일 동안 전국에 있는 문화예술회관의 절반 정도에 다녔다"며 "문화예술회관 관계자에게 작품을 소개하는 메일을 보내고, 우편물을 보내고, 전화를 했지만 단 한 군데도 연락이 없었다. 지역 극단의 가능성을 보고 선택을 해줬더라면 용기를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지역 공연예술의 전망 세미나 모습. 맨 왼쪽부터 김소정 극단 상상창꼬 연출가, 모형오 경남문화예술진흥원 팀장, 이수진 창원문화재단 대리./김민지 기자
지난 9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지역 공연예술의 전망 세미나 모습. 맨 왼쪽부터 김소정 극단 상상창꼬 연출가, 모형오 경남문화예술진흥원 팀장, 이수진 창원문화재단 대리./김민지 기자

◇이수진 창원문화재단 대리 "공연장·문화재단 인재채용 과정 개선해야"

이수진 대리는 현장 기획자 출신으로 창원문화재단 3·15아트센터에서 일한다. 

그는 "과거 기획자로 일할 때 예술시장에서 왜 우리 작품이 안 팔릴까, 왜 공연장 무대에 서기가 어려울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는데 공공예술극장에 일해보니 알겠더라"고 말했다. 

이 대리는 지역 공연장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언급했다. 기획 전문인력이 부족하고 문화예술기관에 지자체 공무원의 파견과 복귀를 반복하며 경영관리와 기획업무를 병행하는 현실 말이다. 또 인건비·시설관리비에 비해 기획사업비가 부족해 기획 공연 횟수가 적고 홍보·마케팅 비용 또한 턱없이 부족하다.

문화예술회관 경영평가의 경우 관객수, 수익 등 정량화된 지표가 잣대가 된다. 그렇다 보니 문예회관에서 기획 공연을 짤 때 대중성·흥행성·수익성을 우선순위로 둘 수밖에 없다. 이에 지역 문화예술단체 작품을 기획공연으로 넣기에는 공연장의 부담이 더 크다. 경영평가 방식의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지역 공헌도, 지역 예술인단체 참여도가 경영평가에 들어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 대리는 문화재단·문예회관의 인재채용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에서 예술분야를 전공하고 문화 현장에서 열심히 경험을 쌓은 친구들이 NCS(직무기초능력)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기획 전문인력, 문화예술 전문분야 인력을 키우기 위해선 채용 과정에서 문화정책, 예술경영 등 현장과 기관에서 요구하는 실용적인 항목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형오 경남문화예술진흥원 팀장 "지역 공연예술 생태계, 지역이 챙기자"

맨 마지막 토론자로 마이크를 든 모형오 팀장은 "지역에서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안정적으로 예술활동을 하고 지역에서 창작 메소드(Method) 활동을 해 나가려면 어떻게 서로 노력하면 좋을까 공공의 역할에 대해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모 팀장은 "지역이 먼저 챙기지 않으면 지역 공연예술단체를 누가 챙기겠냐"며 "지역 공연예술 생태계는 나라가 안 지켜준다, 지역이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프랑스의 한 소도시의 연극단체를 예로 들며 지역밀착형 공연예술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 팀장은 △결과물을 내놓지 않더라도 다양한 실험을 모색할 수 있는 과정 지원 △공공차원의 공연예술 국제 워크숍·레지던스 추진 △경남 연희나 문화기술을 접목한 지역 고유 공연예술 콘텐츠 발전 △예술현장-공연장-지원기관 협력 테이블 구축 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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