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부터 전어로 유명한 곳 이야기 입혀 며느리전어길 조성
상촌마을 갯가 습지 무논과 강·산·바다 어우러져 이색 풍경 자아내

하동군 진교면 술상마을은 전어축제로 유명합니다. 마을 앞바다는 남강과 섬진강의 민물이 바다와 섞이는 지점입니다. 사실 하동과 남해, 사천이 이 바다를 공유한다고 할 수 있는데, 망망대해로 탁 트여있지 않고, 남해섬과 하동해안, 사천해안으로 둘러싸여 마치 큰 호수 같기도 합니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큰 바다 호수이면서 갯벌이 잘 발달해서 먹이가 풍부하죠. 전어가 살기에 딱 좋은 환경입니다. 그래서 술상마을은 옛날부터 전어잡이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며느리 전어길을 걷다

조선 중기에 나온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이란 인문지리서가 있습니다. 여기 보면 곤양현 토산품이 전어라고 돼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하동현 옆에 곤양현이라는 행정구역이 있었습니다. 지금 술상마을, 양포마을이 곤양현에 속했지요. 그러니 곤양현의 전어는 곧 술상, 양포마을 전어인 셈입니다. 이곳에서 나는 전어는 임금님 진상품으로 쓰일 만큼 품질이 훌륭했다고 합니다.

전어축제가 열리는 장소는 사학끝이라고 불리는 마을 어항 너른 공터입니다. 사실 본 마을은 바다와 조금 떨어져 있습니다.

▲ 술상마을 사학끝에 있는 며느리 전어길 중 해안 데크길. /이서후 기자
▲ 술상마을 사학끝에 있는 며느리 전어길 중 해안 데크길. /이서후 기자

사학끝에는 횟집을 겸한 주택들이 조금 있죠. 전어가 많이 나긴 했지만, 술상마을에서 직접 전어를 팔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일송정회센터라고 현재 횟집을 하고 있지는 않은데, 이 집에서 제일 먼저 횟집을 차리고 전어를 팔았다고 합니다. 장사가 잘되자 사학끝에 살던 다른 어민들도 속속 횟집을 열기 시작하면서 술상마을이 전어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술상마을에서 전어축제가 시작된 건 2003년부터입니다. 매년 8월 초 술상리 어촌계가 주최하고 진교면 청년회가 주관하는 정기 축제로 자리 잡았지요. 축제 기간에는 주변 횟집은 물론 술상어업인복지회관 1층에 마련된 공동판매장에서도 전어회를 맛볼 수 있습니다.

2016년에는 전어축제에 이야기가 입혀졌습니다. 사학끝 주변으로 '술상 며느리 전어길'을 만든 거죠. 옛날 한 며느리가 시집살이가 하도 힘들어서 집을 나갔다가 시어머니의 전어 굽는 냄새에 못 이겨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길입니다. 실제로 사학끝 주택 뒤편 소나무 언덕길을 통해 어항을 살짝 벗어나다가 해안 갯벌을 따라 만든 데크 길을 통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1.2㎞ 정도 되는 길입니다.

며느리 이야기 자체는 술상마을만의 것이 아니겠죠. 하지만, 이야기를 현실로 옮긴 그 노력은 칭찬할 만합니다. 사학끝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데크 길은 제법 걷는 맛이 좋습니다. 육지 깊숙이 들어온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고, 바로 눈 앞에 펼쳐진 굴 양식장이나 공룡화석이라도 몇 개 있을 것 같은 바닷가 바위 해변도 독특한 풍경입니다. 작은 게들이 발소리에 놀라 서둘러 숨는 모습도 재밌습니다. 사실 술상마을에서 며느리 전어길만 걸어도 하동 바닷가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습니다.

▲ 금오산 아래 들판과 하천습지가 만든 풍경. /이서후 기자
▲ 금오산 아래 들판과 하천습지가 만든 풍경. /이서후 기자

◇하동 다도해를 바라보며

술상마을에서 노량마을까지는 하동군이 바다내음길로 지정한 걷는 길 코스입니다. 아직은 안내판이며 표지판이 자세하게 만들어져 있지는 않지만 도로변 자전거길을 따라 걸으면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술상마을을 벗어나면 해안도로를 따라 언덕과 갯벌이 이어집니다. 바닷가 언덕을 오르며 그 너머로 펼쳐질 풍경을 상상하는 설렘이 있고, 해안을 따라 굽어진 도로 모퉁이 앞에서는 새로운 풍경에 대한 기대감도 생깁니다. 해안도로는 하동 해안선을 그대로 따라 그린 듯합니다. 육지로 깊이 들어온 해안마다 갯벌이 살아 있습니다. 갯벌 앞으로 바람에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와 그 파도가 해안에 부딪혀 찰랑거리는 소리까지 그윽한 바다 풍경의 일부가 됩니다.

바다 반대편으로는 금오산 자락을 눈으로 더듬으며 걷는 길입니다. 다시 생각하면 금오산이 바다와 만나 만든 경계를 따라가는 길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산자락에 펼쳐진 넓은 들판과 시골 마을 풍경도 이 길의 매력입니다.

▲ 갯벌 뒤로 나란히 보이는 토끼섬, 솔섬, 작은 솔섬, 나물섬. /이서후 기자
▲ 갯벌 뒤로 나란히 보이는 토끼섬, 솔섬, 작은 솔섬, 나물섬. /이서후 기자

때로 큰길을 벗어나 마을이나 해안 샛길로 살짝 들어가 보는 것도 재밌습니다. 해안을 따라 물이 빠져야 드러나는 길이 더러 있습니다. 다만, 물이 들이차고 있을 때는 아예 갈 생각을 말아야겠습니다. 이 주변에서는 갯벌에서 조개를 캐던 이들이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가끔 생깁니다. 도롯가에 해루질(어패류 채취) 사망사고 경고 표지판이 여럿 있는 이유입니다.

걷다 보니 오른쪽으로 금남면 상촌마을 들판이 나옵니다. 들판을 가로지른 하천이 바다로 스며들기 직전 갯벌에 펼친 습지도 훌륭한 볼거리입니다. 주변으로 왜가리 여러 마리가 먹이를 찾고 있습니다. 하동 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입니다. 하천은 수량이 풍부해 콸콸 바다로 흘러드는 소리가 시원합니다. 그러고 보니 상촌마을 바닷가는 무논과 하천, 바다와 산등성이, 해안도로의 노란 안전제방이 어우러져 독특한 색감과 풍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바다 쪽으로는 토끼섬, 솔섬, 작은 솔섬이 마치 하나의 큰 섬처럼 눈앞에 다부지게 서 있습니다. 주변으로 섬이 꽤 많습니다. 하동 섬 중에 생태계 보전을 위해 환경부가 지정한 특정도서가 2020년 현재 9곳이나 됩니다. 자연이 잘 살아 있는 섬이 하동에도 꽤 많습니다. 그래서 하동을 다도해라고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섬들 너머로 삼천포 창선대교 주황색 아치가 아득하게 보입니다. 중평마을 어항에 가까워질수록 토끼섬이 점점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러다 작은 솔섬 뒤로 나물섬이 짠하고 나타납니다. 토끼섬과 솔섬, 작은 솔섬, 나물섬은 정말 가깝네요. 물이 많이 빠지면 마치 서로 연결되어 버릴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너머로 보이는 큰 육지는 남해군입니다. 섬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덧 중평마을 방파제에 도착합니다. 

▲ 해안도로와 산등성이, 갯벌이 독특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서후 기자
▲ 해안도로와 산등성이, 갯벌이 독특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서후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