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둘러싼 갈등 쳇바퀴
세부계획·행정조치 미비
상위법 제정해 재정비를

차별금지법안이 21대 국회에서 7년 만에 다시 발의됐습니다. 칠전팔기의 도전입니다. 이 법은 성별, 장애, 나이, 출신 국가, 인종, 출신 지역, 성적 지향 등 다양한 사유에 따른 차별을 사회 모든 영역에서 예방하고 금지하며, 평등이라는 헌법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 취지입니다. 그간 정부와 일부 의원이 발의했지만, 극우·보수단체가 제동을 걸거나 국회 의지 부족으로 무산을 거듭해왔습니다. 경남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통해 경남의 차별 금지 현실을 엿보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한지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지역사회 대립 극복 '마중물' = 경남은 지난해 6월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실패했다. 2008년과 2012년에 이어 세 번째였다. 더불어민주당 내 견해차로 도의회 본회의에서 논의조차 안 되고 자동 폐기됐다. 의회 밖에서는 시민사회단체와 학부모·종교단체가 찬반으로 극한 대립을 보였다.

인권 의제를 둘러싼 갈등은 지난해 11월에도 있었다. 성 소수자 인권 보호와 성적 다양성을 알리는 제1회 경남퀴어문화축제가 충돌 없이 마무리됐지만, 축제 당일 기독교·보수단체들은 동성애 반대 집회를 벌였다. 또 올해 초만 해도 학부모·종교단체는 학생인권조례 반대 때처럼 '문란한 성행위 조장', '동성애 치유 불가능' 등을 이유로 내세우며 경남도 여성가족재단 설립을 반대하는 집회를 했다.

이처럼 경남은 지역사회에서 '차별'과 '혐오'를 마주앉아 이야기하고 곱씹어봐야 할 배경을 안고 있다. 경남도는 다양한 개별 조례로 직장과 사회 내 차별 금지를 규정해놓고 있지만, 이번에 추진 중인 법안처럼 포괄적이지는 못하다. 장혜영(정의당) 의원 등 10명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은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 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 신분 등을 차별 금지 사유로 담고 있다.

특히 도지사와 시장·군수, 도교육감은 정부의 차별시정기본계획에 따라 연도별 세부시행계획을 세워야 하고, 행정·재정 조치를 하게끔 했다. 또한 이 법에 반하는 기존 조례와 규칙 등은 국가인권위원회 의견을 들어 바로잡아야 한다.

◇조례 보강·재정비 필요 = 지자체 대표적인 차별 금지 조례는 '장애인 차별금지 및 인권보장에 관한 조례'라고 할 수 있다. 경남은 지난해 6월 이를 제정했는데, '누구든지 장애 또는 과거 장애 경력 또는 장애가 있다고 추측됨을 이유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앞서 2010년 만들어진 '경남도 인권 보장 조례'도 있다. 여기에서 '인권 약자'는 영유아, 어린이, 청소년, 노인, 장애인,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자와 다문화가정 등 소외되기 쉬운 인권 취약 집단 또는 다수인보호기관에 수용돼 있거나 이를 이용하는 사람을 말한다.

'경남도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는 도지사가 도내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임을 이유로 동종 또는 유사 업무에 종사하는 무기계약노동자, 통상노동자, 공공기관장이 직접 채용한 노동자보다 차별적 처우를 해선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또 경남도는 '노동청소년 보호 및 고용 우수업체 장려 조례', '감정노동자 권리보호 조례' 등도 두고 있다.

반면 경남에는 없는 조례인데, 서울시는 '공무직 채용 및 복무 등에 관한 조례'에 차별적 처우 금지 조항을 담고 있다. 대전, 부산, 충남, 서울 강북·구로·영등포구, 천안 등은 '고용상의 차별행위 금지 조례'를 두고 있다. 취업 희망자 또는 소속 노동자에게 균등한 고용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울산은 '노인 취업차별금지 조례'를 2013년부터 시행 중이다.

인권과 평등 관점에서 국내외 차별 금지에 관한 조례 제정이 잇따르고 있다. 일본 고마에시와 가와사키시에는 '인권 존중 기본조례'가 있다. 혐한 시위에서 벌어지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와 성별·인종·국적·장애·질병·성적 지향 등에 따른 인권침해 행위를 금지한 것이다.

다문화 가족 지원·외국인 주민 인권증진·성평등·민주시민교육·청소년 노동인권 보호·아동청소년 인권·문화다양성 보호 조례 등도 차별 금지와 관련한 조례로 거론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경남도 역시 조례 보강과 재정비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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