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돌아왔다. 그는 매년, 봄의 시작을 알리는 은은한 꽃향기와 함께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 어른들은 그가 불쌍한 놈이라며 혀를 끌끌 차면서도 티가 나게 그를 피했다.

마을 어른들은 그를 무시했지만 그는 마을 어른들과 마주칠 때마다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는 나에게도 인사를 건넸는데, 종종 슈퍼에서 얼음과자라든지 막대사탕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사다 손에 쥐여 주곤 했다. 그럼 나는 "감사합니다."라며 덥석 그것들을 받아먹었다. 마을 어른들은 부정 탄다며 그에게서 아무것도 받아먹지 말라고 타박했다. 그러곤 그가 날 때부터 불운을 안고 태어났다고 했다. 그가 태어나던 어느 봄날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그가 더 자란 뒤, 동네 어귀 개천가에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다른 봄날에는 그를 키워주던 할머니마저 홀연히 세상을 떠나버렸다고 했다.

모두가 그를 보며 분명 엇나갈 거라고 수군거렸는데, 정작 그는 아버지가 대처로 나간 뒤라 그의 고모와 그저 그림자처럼 조용히 지낼 뿐이었다. 엇나갔다고 해봐야 고작 마을 이장님 댁의 감나무에서 홍시 하나를 따먹었던 일 외엔 그가 일으킨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우려할 만한 큰 사건은 그가 막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에 일어났다. 그가 살던 집이 큰 화재로 주춧돌만 남겨놓고 폭삭 주저앉아버린 것이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그로 인해 그의 집안이 부정을 탄 게 틀림없다며 흉흉한 말들로 그를 옥죄었다. 결국, 그는 고등학교를 채 졸업도 하기 전에 마을을 떠났고, 그의 아버지가 병으로 눈을 감기 전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 어른들이 그에 대해 온갖 폄하하는 말들을 늘어놓는 데에는 그의 생김새에 관한 것도 있었다. 그는 늘 창백한 얼굴에 눈 주위가 고통과 피로로 물든 듯 시커맸는데, 몸집도 왜소해 멀리서 보면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그가 부모의 묘를 찾아 마을로 돌아올 때마다 표정을 찡그렸다.

"불쌍한 놈이지 뭐냐. 전생에 죄를 지었나부다 했지. 마을 잔치가 있어도 저것은 그 컴컴한 눈만 쏙 보였다가 소리 없이 사라져분께 우리는 부를 엄두도 못냈어. 허이고, 그래도 봄만 되믄 지 애미, 애비 찾아 저렇게 오니께 참……."

나는 할머니가 그에 대해 꺼내셨던 말을 떠올리며 마을 이장님에게 인사하고 있는 그를 쳐다봤었다. 마을 어른들은 물론이고 내 또래들까지도 그와 잠깐이라도 붙어 있으면 불운이 옮는다고 생각하였지만, 나는 그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놈이랑 붙어 있으믄 없던 운도 떨어져 버리니께, 니들은 말도 섞지 말어라. 너네두 저렇게 시커멓게 다니고 싶지 않으믄 어른들 말 들으란 말이여!"

마을 어른들은 그가 나타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두고두고 말해왔지만, 나는 어른들의 말과는 정반대인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여덟 살이었을 적이었다. 마을 계곡에서 혼자 수영을 하며 놀다 수심이 깊은 곳에 들어가 죽을 뻔했던 날, 허우적거리던 내 손을 잡아 지상으로 끌어 올려준 사람이 그였던 것이다.

"괜찮은 거여? 어디 다친 덴 없구?"

그는 숨이 머리끝까지 찬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었다. 나는 그날 그의 눈을 처음으로 가까이서 마주했었다. 말라 죽어버린 우물처럼 시커멓기만 할 줄 알았던 그의 눈동자는 어느 맑은 날의 밤처럼 어둡게 빛나고 있었고, 도깨비 같을 줄 알았던 그의 목소리 또한 지극히 평범했다. 그날 그는 내 손을 잡고 슈퍼로 가 얼음과자를 사주며 내게 당부했었다.

"다시는 혼자 깊은 곳에서 놀지 말어라, 잉?"

그러곤 씩 웃으며 다시 제 갈 길을 가던 그의 축축한 뒷모습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그가 불운을 몰고 다닌다고 했지만 그는 내게 생명줄이라는 다시없을 귀한 행운을 건네 준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어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친구들이 그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언급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거세게 반박하곤 했다. 친구들이 그의 생김새를 비하하며 조롱할 때는 괜히 가지고 놀던 돌멩이를 흙바닥 위에 던져놓고 집으로 돌아가 버린 적도 있었다. 내 눈에 비친 그는 불운덩어리가 아니라 매년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였다. 지난해에도 그는 어김없이 봄이 왔음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부모님을 뵙기 위해 돌아왔다. 다리 건넛마을 묘지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보여, 나는 일부러 잡초를 뽑기도 하고 개미 떼와 놀기도 하며 그가 성묘를 마치기를 기다렸다. 풀벌레들 소리가 짙게 들려올 때쯤 그가 길게 자란 풀들을 헤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재빨리 다리를 건너 그의 뒤를 쫓아갔다.

"아저씨!"

만약 누군가가 봤다면 기겁을 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서슴지 않고 그를 불렀다.

"날 부른 거여?"

그가 눈을 느리게 끔뻑이며 물었다. 대차게 불렀지만 딱히 할 말이 없어 나나 아저씨나 당황하던 찰나, 나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했다.

"아저씨, 나 얼음과자 좀 사주랑께요."

"무얼 사줘?"

"얼음과자요. 덥단 말이에요."

"허허……."

내 입에서 나오는 뻔뻔한 말에 나 스스로도 놀라운 순간이었다.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짓더니, 이내 "그래, 아저씨가 하나 사주마!"라며 내 손을 잡고 슈퍼로 향했다. 처음으로 잡았을 땐 물기 때문에 차가웠던 그의 손이 지난해에는 군데군데 물집이 잡힌 채 덥게 느껴졌다. 슈퍼 아주머니는 손을 잡은 채로 성큼 들어온 나와 아저씨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마 우리가 슈퍼에서 나가면 어머니한테 금방이라도 이를 듯했지만 나는 끝까지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우리는 얼음과자를 사이좋게 하나씩 입에 물고 어지럽게 핀 양지꽃을 이불 삼아 덮고 있는 들로 걸어갔다. 나는 그에게 친구들과 논 이야기, 어머니에게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 따위를 들려주었고, 그는 예의 너털웃음을 지으며 가만가만 들어주었다. 옛적에 계곡에 빠졌었던 나를 구해줬던 일은 기억하냐고 물으니 "그 병아리 같던 놈이 벌써 이렇게 큰 거여?"라며 놀라기도 했다. 그렇게 쉴 새 없이 조잘거리다 보니 어느새 얼음과자는 입안에서 다 녹아 없어지고 내 이야기는 바닥나버려 금세 싫증이 났다. 나는 내 발밑에 아무렇게나 엉켜 있는 풀들로 손장난을 쳤다. 비릿한 풀냄새가 손에 묻어났다. 내 손과 옷에 물든 진한 녹색의 풀즙에 나는 구겨진 종이 같은 인상을 지었다. 닦을 것이 없나 두리번거리던 그때,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며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할머니꺼정 돌아가시고 아부지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때는 밥 대신 눈칫밥만 먹었다니께. 고모님이 계시긴 혔지만 아무래도 집이 여간 어려웠어야지, 그러다 보니 키도 안자라고 그랬지. ……그놈의 불난리를 겪었을 때는 참말로 죽는 줄 알았지 뭐여. 하느님꺼정 나를 미워하는 줄 알고 콱 죽어버리려구 했는디, 그게 마음대로 안되더라고. 마을 사람들이 쉬지도 않고 엄니 잡아먹은 놈이다, 부정 탄다 말하니께 마을을 나가부렀어. 나가서 뭐든 하믄서 악착같이 살았지. 아니여 나는 나쁜 놈이 아니여……, 계속 머릿속으로 주문처럼 말했당께. 온갖 말들이 하도 내 귀에서 나가질 않아서……."

그가 내게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진 않은 것 같았다. 다만, 오랜 세월 동안 혼자 속으로 묵혀 뒀던 그의 응어리가 담쟁이덩굴처럼 올라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듯했다.

"아부지가 돌아가신 뒤부터는 봄만 되믄 여길 왔어. 얼굴도 모르는 울 엄니도 보고, 아부지도 보고 저 뒤에 모신 할머니헌테도 인사드리려고……."

나는 붉은 태양빛을 받고 있는 그의 옆얼굴을 쳐다봤다. 그의 눈언저리에 맺혀 있는 좁쌀 만한 눈물방울은 못 본 척하면서.

"내가 봄만 되믄 눈물이 많아져."

내 눈길을 읽은 건지, 아니면 이것도 그의 이야기 중 일부인 건지 모를 말이었다.

"내 소원이 그거여. 울 엄니 목소리 딱 한 번만 들어보는 거. 그리고 나헌티 이렇게 말해주는 거여. 얘야, 니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다. 그러니 그냥 살어라. 이렇게 말이여."

그의 이야기는 길었지만 나는 듣는 내내 그가 내게 해준 것처럼 너털웃음을 지을 수도, 그렇다고 다시 풀로 손장난을 칠 수도 없었다. 그저 그를 따라 농도가 짙어지고 있는 하늘을 쳐다볼 뿐이었다. 들에서 내려온 뒤, 그는 내게 잘 지내라는 인사 한마디를 툭 던지곤 마을 밖으로 걸어갔다. 묵묵히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엔 겨울의 혹독한 추위는 사라지고 내내 봄의 온기로 가득했었다. 그러나 그 온기가 너무나 쓸쓸하고 아파 보여, 나는 그의 그림자가 지나간 길 위에 샛노란 개나리를 놓아뒀었다.

그는 올해도 마찬가지로 봄을 이끌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그가 돌아오기 하루 전부터 마을 회관에 모여 그에 관한 얘기를 입에 올렸고, 나는 사람들의 험담을 아예 귀를 틀어막은 채 그가 마을 입구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어쩐 일인지 제 두 다리로 걸어 들어온 게 아니었다. 그는 구름만큼이나 하얀 유골함에 담긴 채였다. 유골함을 들고 있는 네모난 안경을 쓴 남자가 이장님을 찾았다. 이장님은 남자를 경계하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남자의 입에서 불쑥 그의 이름이 나왔다. 일순 모두가 불안감에 몸이 감겼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짝은 누군디? 무슨 일이여?"

이장님이 남자에게 물었다.

"예, 저는 춘식이 그 친구랑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인데요. 춘식이가 며칠 전에 공장에서 일어난 사고 때문에 그만……."

정신이 아찔했다. 유골함을 봤을 때부터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건 진작에 느꼈지만, 직접 말로 들으니 서늘함은 배가되었다.

"춘식이 그놈, 틈만 나면 저한테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이 마을에 대해서요. 이곳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꼭 돈 많이 벌어서 편히 쉬실 수 있게 정자 하나라도 지어 드려야겠다 생각한다고……, 그런데 참, 평소엔 끄떡없던 줄이 그만 끊어져버려서……."

남자가 말을 하면 할수록 얘기를 듣는 마을 사람들의 고개는 숙여져 갔다.

"마을 어르신들만 보면 자기 할머니가 생각난다고 그러더라고요."

남자는 그가 들었던 산재 보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가 마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 했었으니, 그의 명의로 받을 보험금은 마을에서 책임지고 관리해주면 좋겠다고. 유골함을 건네받은 이장님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져 있었다. 아마 마을 사람들 모두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터였다 작게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굳어 있던 발을 겨우 움직여 들을 향해 뛰어갔다. 심장이 쿵쿵 방아질을 했다. 들은 예와 같은 드넓은 양지꽃 이불을 덮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 혼자 그 이불 위로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눈부시게 푸른 하늘 위로 어린 시절의 그가 그의 어머니와 다정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환한 그의 얼굴 위로 개나리색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움직였다. 숨을 들이쉬기만 하면 향기로운 꽃내음이 코를 간질였다. 그와 마지막으로 함께 돌아온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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