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복무 등 불공정성이 낳은 사회 문제
부모의 맹목적 사랑이 빚은 폐해서 비롯

'자녀의 인성은 가정에서 자란다'고 했던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 <아우구스투스>는 자녀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자칫 독이 든 양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을 잃은 엘리자베스는 아우구스투스가 태어나자 이웃집 노인 빈스반겔에게 아이의 대부가 되어주기를 부탁했고, 그는 이 부탁을 받아들였다. 엘리자베스는 유복자인 아우구스투스에 대한 집착이 컸다. 빈스반겔은 천사와 같은 존재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기로 약속했다. 엘리자베스는 요람 곁에 앉아 아기를 위해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소원일지 고민에 빠졌다. 아기를 부자로 만들어 달라고 할까. 아니면 힘이 세게 해 달라면 어떨까. 총명하고 슬기롭게 자라도록 해 달라면 어떨까 하고 오랜 생각 끝에 이런 소원을 빌었다. '모두 너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라고.

아우구스투스는 어머니가 바라던 대로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 정원에서 꽃을 꺾는 등 미덕을 발로 짓밟는 행동을 해도 사람들은 그를 용서해주었다. 모든 일이 그가 생각한 대로 되어갔다. 친구들도 그에게 무조건 열중했다. 그러나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그런 삶은 불행이었다. 어머니의 기도에 의해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아이로 태어난 아우구스투스. 정작 그는 아무도 사랑할 줄 모른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점차 마음은 공허하고 영혼은 병들어 갔다. 아무런 욕망도 가치도 느낄 수 없었다. 사랑에 둘러싸여 언제나 받기만 하는 생활에 권태를 느껴버린 것이다. 급기야는 어느 날 진실 없는 이 삶을 끝내기로 하고 독약을 마시려고 하는데 빈스반겔이 찾아와 안타까워하면서 아우구스투스를 위해 하나의 소원을 더 들어주기로 한다. 그가 빈 소원은 "제가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주십시오"였다.

그렇게 마력이 사라진 아우구스투스의 삶은 한순간에 몰락해버린다. 앞다투어 그에게 재물을 바쳤던 친구들은 사기꾼으로 그를 고소했고,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던 하인들도 등을 돌렸다. 그들의 얼굴에는 증오와 혐오만이 가득했다. 그를 변호하거나 옹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온갖 죄악이 폭로되면서 감옥에 갇혀버린다. 하지만 사치스러운 생활 속에서 느꼈던, 질식할 것만 같았던 무서운 공허와 고독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에게 소용이 있는 사람이 되기로 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나눠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모든 이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아름다운 시절에는 그토록 공허했던 세상이 이제는 기쁨과 감동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1920년대지만 지금 우리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많은 부모는 자녀를 위한다는 이유로 넘치게 사랑하고 아낌없이 내어주며 희생한다. 하지만 지나친 사랑은 자녀를 나약하게 만들고, 과도한 총애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들은 반사회적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이 책은 경고한다.

부모의 재력을 이용해 각종 특혜를 누린다는 '황제 병사' 논란과 자녀 입시 비리 의혹에 이어 최근에는 모 그룹 총수 3세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에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준 의혹을 받는 등 불공정과 불평등의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볼 때 헤세의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비훈(丕訓)을 준다.

"부모와 자식 간 천륜은 삶의 근원적 행복이 되기도 하고 불행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불행인 순간에도 문제는 역시나 '지나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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