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점집 몰려 있던 거리
카페·공방·밥집 등 생겨나며
젊은 활력 넘치는 김해 명소로

김해시 봉황동은 요즈음 김해를 대표하는 젊은 거리다. 정확하게는 도로이름으로 봉황대길, 봉황대안길과 그 주변 주택가에 작고 아기자기한 카페나 공방, 문화예술공간들이 밀집해 있다. 지금처럼 거리가 예쁘게 꾸며지기 전에는 점집들이 몰려 있어 '신의 거리'라고도 불렸다. 그 이전에는 김해에서 장유로 가는 유일한 도로인 '장유가도'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은 '봉리단길'이라고도 불리지만, 정식 명칭도 아니고 공간 주인들이 딱히 선호하는 이름도 아니니 그냥 봉황대길 정도로 하면 좋겠다.

봉황동은 법정동 이름인데, 행정동으로는 회현동이다. 봉황동이란 이름은 조선 후기 김해 부사 정현석이 나지막한 언덕 모양새가 봉황이 날개를 편 것 같다며 봉황대라고 한 데서 비롯했다. 현대에 이르러 가야시대 집터 등 유적이 발견되면서 봉황대 주변이 금관가야지역 최대 유적지가 됐다.

봉황대길을 둘러보기 전에 가까운 봉황대유적 패총전시관을 찾았다. 조개 더미를 뜻하는 패총은 고대인들이 버린 생활쓰레기라고 할 수 있다. 조개 더미가 차곡차곡 쌓인 단면을 보며 현대에서 고대에 이르는 오랜 세월을 가늠해 본다.

▲ 봉황대길 풍경. 오래된 건물마다 예쁜 공간들이 들어섰다. /이서후 기자
▲ 봉황대길 풍경. 오래된 건물마다 예쁜 공간들이 들어섰다. /이서후 기자

패총전시관에서 나오면 봉황대길 터줏대감인 서부탕이다. 색소폰으로 멋들어지게 불 줄 아는 사장님이 80년대 초반부터 거의 40년을 묵묵히 버티고 있다. 서부탕 옆으로 빈티지 옷가게 응접실과 갈나무 사진관이 붙어 있다. 그 옆으로 레트로(복고) 느낌을 잘 살린 구멍가게 미야상회와 파이 맛집으로 알려진 치키파이가 이어진다.

건너편으로는 오래된 시대세탁소 옆으로 은모루란 금속 공예 공방과 덮밥 전문집 밥위애(愛)가 나란하다. 작은 골목을 건너뛰면 봉황2동 노인회관이 있고 바로 옆이 20~30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낙도맨션이란 카페다. 노인들이 찾는 공간과 젊은이들이 찾는 공간이 나란히 있는 게 어찌 보면 어색하기도 하지만, 이런 부조화의 조화가 봉황대길의 매력이다.

낙도맨션이 있는 제법 큰 상가건물은 전체적으로 회현종합상사라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건물 지하에 봉황대길에서 제일 유명한 밥집 하라식당, 마당 쪽으로 들어가면 카페 겸 로스팅 공방 릴리 로스터즈도 있다. 여기에 국수전문점 낭만멸치와 아기자기한 옷가게 93빈티지가 입주해 있다.

▲ 6개 공간이 함께하는 회현종합상사 건물 마당.<br /><br />/이서후 기자
▲ 6개 공간이 함께하는 회현종합상사 건물 마당. /이서후 기자

회현종합상사는 '재미난사람들'이 만든 문화예술협동조합이다. 이들이 봉황대길에 가장 먼저 자리를 잡고 지금 같은 활기를 이끌어냈고, 지금도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도만 해도 봉황대길의 매력을 어느 정도 맛봤다고 할 수 있지만, 길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 생긴 다양하고 멋진 공간들이 계속 나온다. 새로 들어온 공간들만 100여 곳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김해 봉황동 봉황대길에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면 한나절이 금세 지난다.

▲ 3봉황대길 터줏대감 서부탕. /이서후 기자
▲ 3봉황대길 터줏대감 서부탕. /이서후 기자
▲ 4복고풍 느낌을 살린 구멍가게 미야상회 /이서후 기자
▲ 4복고풍 느낌을 살린 구멍가게 미야상회 /이서후 기자
▲ 오래된 정미소를 고친 맥줏집 안인정미소. /이서후 기자
▲ 오래된 정미소를 고친 맥줏집 안인정미소. /이서후 기자


봉황동에서 만난 사람들

◇하라식당 김혜련 씨 = 오래된 동네인 봉황동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건 지난 2017년 회현종합상사가 들어오면서부터다. 회현종합상사는 문화예술공동체 재미난사람들협동조합이 만든 공간으로 6개 가게가 운영 중이다.

이 중 지하 1층에 있는 하라식당은 목·금·토·일요일 주 4일만 문을 여는 음식점이다. 동갑내기 김충도 대표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김혜련(49) 씨는 지난 2015년 골목재생 사업 인연 덕에 봉황동을 처음 방문했다. 김해에 산 지 22년 만에 그는 '보석 같은 곳'을 발견했다.

김 씨는 "아파트에 살다가 이곳에 오니 현실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이 느껴졌다"며 "봉황대나 동네를 거닐다 보면 옛날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가끔 별도 보인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간 회현종합상사에선 재밌고 의미있는 이벤트가 열렸다. 결혼 40주년을 맞은 옷수선 사장님 부부의 '리마인드 결혼식', 어르신과 청년, 아이들이 한데 모인 '골목콘서트', 남자는 나비 넥타이를 하고 여자는 드레스를 입고 즐기는 동네 마을잔치 '우아한 달빛파티' 등이다.

만 3년이 지난 지금 봉황동에는 가게 100개가 들어왔다. 김 씨는 "○○단길과 차원이 다른 곳을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 싶다"며 "상업적인 공간이 아니라 좀 더 예술적인 공간으로 말이다"고 말했다.

◇서부탕 김기수 대표 = 봉황동유적 패총전시관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목욕탕. 1979년에 착공해 이듬해 문을 연 서부탕이다.

40년 된 목욕탕 주인장 김기수(65) 씨는 봉황동에서 나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동네의 희로애락을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김 씨는 "동네가 거의 변화 없이 낙후된 마을이었다"며 "근래 김해여객터미널과 봉황역이 생기고 젊은 사람들이 카페, 밥집 등을 차리면서 유동 인구가 늘었다"고 말했다. 동네 분위기가 좋아졌느냐고 묻자 그는 "노인들만 보다가 젊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니 보기가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동네는 수로왕릉과 왕궁터 발굴지역 주변으로 대부분 문화재보호구역으로 개발행위가 제한되어 있다. 서부탕이 있는 곳도 고도제한이 걸려있다. 김 씨는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 보면 집을 수리하지도 못하고 지내는 나이 든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봉황동에는 유달리 점집이 몰려있다. 점집이 많은 이유가 봉황대 때문인지, 동네 기운이 좋아서인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김 씨는 "임대료가 싸다 보니 점집이 많이 들어왔고 이제는 점집이 나가고 카페가 많이 들어서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드러냈다. "많은 사람이 우리 동네를 찾는 건 좋은 일이나 주말이나 공휴일이 되면 주민들이 주차할 곳이 없어 불편한데 이게 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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