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논개 영정 퇴출 앞장…이타행 응집한 시어 '몸살'
삶 반추하며 쌓은 자리행과 와불 화두…끝내 해탈 열반

◇공양으로 가는 눈물의 자리행

<눈물 공양>(2010, 천년의시작)은 박노정(朴魯貞)의 세 번째 시집이다. 바로 서시에 나오는 '눈물 공양'이 표제시인 셈이다. 눈물 공양이란 무엇일까. 수많은 공양 중에 왜 하필 '눈물 공양'일까.

 

우레 같은 비나리로
한 사날 몸살에 들고 싶다

불이 불을 댕겨
마침내 길라를 트는구나
갓 맑은 눈물 한 종지
한 줄만 더 태우고 싶다

- '눈물 공양' 전문

 

시에는 '망진(望晋)봉수'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망진봉수는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 망진산에 있는 봉수를 말한다. 진주성 촉석루 남강 건너편에 망진산이 있다. 망진산 봉수는 남쪽의 사천 안현산에서 보내는 신호를 받아 북쪽에 있는 진주시 명석면 덕곡리 광제산 봉수에 전달하는 봉수이다. 여기서 드러난 기표 '봉수'와 숨어있는 기표 '봉화'가 시를 해석하는 데 의미작용을 할 수 있다. 시를 풀어서 보기로 한다.

1. 우레 같은 비나리로 한 사날 몸살에 들고 싶다
2. 불이 불을 댕겨 마침내 길라를 트는구나
3. 갓 맑은 눈물 한 종지 한 줄만 더 태우고 싶다

1에서 주제어는 '비나리'와 '몸살'이다. '비나리'와 '몸살'을 연결하는 것은 '한 사날'이라는 기간이다. '한 사날 몸살'은 '비나리'를 강조한다. 이렇게 강조한 '비나리'는 무엇일까. 2에서 봉화는 안현산·망진산·광제산으로 불에서 불을 댕겨 봉수로 길꼬내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의 '비나리'는 무엇인가. 3에서 시인은 '갓 맑은 눈물 한 종지'가 되어 '한 줄만 더 태우고 싶다'고 한다. 그러니까 시인의 '눈물'이란 갓 맑은 한 종지 촛물이다. 촛불이 되기 이전 촛불로 불타기에 앞선 순수한 열정이다.

망진봉수에서 봉화는 이 시에서는 '비나리' '눈물'이고 봉수는 '몸살'이고 다른 시에서는 '울컥'으로 드러난다. 앞엣것을 일종의 자리(自利)로 본다면 후자는 일종의 이타(利他)가 된다. 자리란 스스로를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노력하고 정진하여 수도의 공덕을 쌓아서 생기는 복락과 지혜 등 과덕의 이익을 스스로만 누리는 것이다. 이타란 다른 이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으로 자신뿐 아니라 모든 중생의 구제를 위해 닦는 공덕을 말한다.

시인의 자리행은 네 편의 연작 시 '자화상'으로 집약된다.

첫 번째 '자화상'에서 시인은 사랑 믿음 소망과 돈 권력 명예의 이름으로 남상거리는 '만행(萬行) 중의 만행(蠻行)'에 대해 징한 눈물을 됫박으로 짜낸다. '자화상2'에서 시인은 한때 예의범절 빼어난 사람으로 살아볼까도 했지만 까짓껏! 낙화유수로 권말부록으로 백수건달로 드난살이로 살며 철 지난 몸살을 앓는다. 반어법으로 드러난 자화상이다. '자화상3'에서는 어쩌다 가정을 꾸렸지만 유목민이다. '자화상4'에서는 세상살이에 겁먹고 떨면서도 곡비로 자처하고 핏대를 세우고 늘푸른 나무가 되고도 싶었으나 허섭쓰레기로 우와좌왕하며 겨우 버텨내고 있다.

시인의 눈물어린 자리행은 후회와 참회, 반목과 질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부끄러운 자신 되돌아보기는 두 번째 시집 <늪이고 노래이며 사랑이던>(2020, 해들누리)에 나오는 '자화상'이 원형이다. 이 원형에 뜻넓이를 보태어 네 편의 연작시를 써낸 것은 시인 스스로 의(義)로 가는 길찾기인 셈이다.

'빈자리 곁에'에 이르면 시인의 자리행은 무상이 아니라 처참한 허무와 맞닥뜨리게 된다.

 

물음표 대신
느낌표 하나 새겨 놓고
마침표는 차마
찍지 못하네

질질 끌고 가는

- '빈자리 곁에' 전문

▲ 박노정 시인은 2018년 7월 4일 '해탈 열반'하였다. 가진 것이 없으니 비울 것도 채울 것도 없었다. 해탈 열반이란 공적한 중도를 이름이고 시인의 생애가 시중하고 적절하였다는 말이다. 사진은 2015년 당시 진주형평운동 회장으로 활동한 박노정 시인. /경남도민일보 DB
▲ 박노정 시인은 2018년 7월 4일 '해탈 열반'하였다. 가진 것이 없으니 비울 것도 채울 것도 없었다. 해탈 열반이란 공적한 중도를 이름이고 시인의 생애가 시중하고 적절하였다는 말이다. 사진은 2015년 당시 진주형평운동 회장으로 활동한 박노정 시인. /경남도민일보 DB

◇호의와 대동의 이타행

'갓 맑은 눈물 한 종지'로 시작된 시인의 자리행은 비나리와 같은 '몸살'로 이타행을 하고 있다. '몸살'은 다시 '울컥' '카랑'으로 시적 형상화를 하고 있다.

1. 절절 끓는 몸살을 앓고 있네 ('통일의 휘파람을 부르다 말고')
2. 한때 절절 끓던 몸살도 ('성욕 한통속')
3. 혼자 먹는 밥 울컥, 밥 먹다 말고 손가락도 숟가락도 서러워서 목이 메인다 ('울컥, 밥')
4. 한 숟갈 삼키다 울컥한다 한 문장 베끼다 울컥한다 울컥하는 것들은 모두 거룩한 것들이다 ('거룩한 허기')
5. 벼랑 끝에 붙박이로 새겨진 카랑한 역사여 ('호의와 대동으로')
6. 진주 기생 정신 한 가락 남강가 대숲 대이파리 끝에 카랑말짱하게 빛나고 있으니 ('산홍(山紅)')

몸살이란 몸이 몹시 피로하여 팔다리가 쑤시고 오한이 나거나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병을 말한다. 그런데 '몸살'은 진주 정신인 '낙선호의(樂善好義)'나 남명의 '경의사상(敬義思想)'과 맞닿아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의가 바로 선 세상이다. 그런 사람 천지에서 사람 냄새를 풍기며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진주 사람들은 대동(大同) 세상이라고 하였다. 나는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발문에서 시인을 '진주사람 박 처사'라고 하였다. 시인은 진주의 민중영웅들을 찾아가기 위하여 몸살을 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울컥' 또는 '카랑'과 같은 진통을 겪고 있다.

김수업 교수는 진주의 지신을 연구하면서 진주의 귀신이 '불구'라고 하였다. 왜 아닌가. 사람들은 산을 깔아뭉개고 구멍을 뚫고 가람을 막아버리고 아파트를 짓기 위하여 말뚝을 때려 박는다. 지신의 온몸이 온전할 리가 없다. 진주의 민중영웅 논개, 산홍, 걸인, 진주기생 등은 모두 정치사회적 생명에 '결손'을 입은 '불구'이다. 그들은 이와 같은 고난을 겪고 일어나 대지의 어머니, 진주를 지키는 민중 영웅이 되었다. 계사년 왜란 때 왜장을 끌어안고 의암에서 낙화처럼 남강에 투신한 논개는 수자상을 버림으로써 진주와 조국을 지키는 영원한 대지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런데 금비녀를 뽑아 왜총독에게 바치는 '금차봉납도'를 그린 친일화가 김은호가 왜색풍의 미인도 논개를 그림으로써 그 절개에 먹칠을 하였다. 그뿐인가. 김은호는 성춘향과 신사임당의 영정을 그리고 율곡 이이의 영정마저 왜색풍으로 그림으로써 민족정기를 훼손하였다.

1993년 나는 청주에서 친일화가 김기창 기념관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진주신문>에는 논개 영정을 퇴출해야 된다고 열심히 칼럼을 썼는데 한 교수로부터 자신이 소장한 김은호 그림값이 떨어진다고 항의하는 전화를 받기도 하였다. 진주에서 발행하는 한 일간 신문에서는 한 교수가 나를 경상대 3대 빨갱이 중의 하나라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박노정 일생의 정점은 <진주신문> 발행인으로서 1993년부터 논개 영정 퇴출운동에 앞장서서 마침내 2005년 망치로 유리를 때려 부수고 논개 영정을 떼어낼 때까지이다. 오직 논개만이 박노정에 의해 비로소 친일화가의 모독에서 해방되었다. 그러니 논개는 시인에게 각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노작은 이미 두 번째 시집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넓이와 깊이를 보탠 것이다.

'호의와 대동으로'에서 논개는 눈물 분노 사랑이며 천둥 죽비 소리, 수천 수만의 빙의(憑依), 촉촉한 생기, 벼랑 끝에 붙박이로 새겨진 카랑한 역사이다. '모두의 애인이요 겨레의 넋인'에서 시인은 논개와 날 잡아 삼가 통성명하고 싶다고 한다. 꼭 한 번만 으스러지게 껴안고 싶다고 한다. 소스라치듯 감전되고 싶다고 한다. '논개 연가'에서는 그리하여 나라 지켜 몸 바친 논개의 뜻으로 이 역사를 갈무리할 것을 다짐한다.

1593년 계사년 왜란 때 논개가 순국한 이후 326년 뒤인 1919년 기미년 만세혁명이 일어난다. 이 때도 논개의 후예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초승달처럼 시퍼런 조선낫을 거머쥐고 일어난다. '조선낫 한 자루'에서처럼 잘 드는 조선 낫 한 자루 시방 막 춤을 추는데. 3·1운동이 전국 각지로 퍼지자 진주에서는 3월 19일 기생독립단 일대가 태극기를 앞세우고 촉석루를 향해 시위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일본 경찰이 기생 여섯 명을 붙잡아 가두었는데 한금화(韓錦花)는 손가락을 깨물어 흰 명주자락에 "기쁘다, 삼천리 강산에 다시 무궁화 피누나"라는 가사를 혈서로 썼다.

강도 왜로는 1918년 토지조사사업으로 조선인의 땅을 빼앗고 젊은 처자는 성노예로 전선으로 몰아세우고 청장년들은 징용으로 끌고 가니 조선의 젊은 처자들은 권번의 기생으로 팔려 갈 수밖에 없었다. 왜로의 착취지배가 이와 같았다.

'진주기생독립단'에서 진주 기생들은 봇물 터진 대한독립만세 소리와 함께 태극기 휘날리며 치마폭 펄럭이며 바삐 나아간다. 논개와 산홍이 지핀 불씨가 삼일 만세로 다시 활활 타오르고 그 만세 소리는 시방도 시퍼런 남강물에 굽이친다.

<매천야록>에 의하면 을사오적 이지용이 천금을 가지고 와 첩 되기를 청하였으나 산홍은 역적의 노리개가 될 수 없다고 거부하였다. '산홍(山紅)'에서 시인은 진주 기생의 정신은 남강가 대숲 대이파리 끝에 카랑말짱하게 빛나고 있다고 한다.

같은 처지로 재물과 땅을 빼앗기고 거리로 내몰린 '진주걸인독립단'은 몽당 숟가락으로 깡통 밥그릇 힘차게 두드리며 대한독립 만세를 부른다. "우리가 떠돌며 빌어먹는 것인즉 왜놈들이 우리 재산과 인권을 빼앗아간 때문이다. 나라가 독립 못하면 이천만 동포가 모두 빈곤의 구렁에 빠져 거지가 될 것"이라 우렁차게 외치며 노도처럼 거리로 나선다. 맞는 말이다. 참으로 당연하다.

시인은 모던하거나 예쁜 시를 쓰지 않는다. 오히려 가래 끓는 목소리로 함성과 절규를 내질렀을 뿐이다. 그것은 시인만의 목소리요 신음이요 통곡이었다.

 

◇둘이 아닌 해탈 열반

눈물로 등가되는 자리행과 몸살로 비견되는 이타행이 양항 대립으로 길항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앞서 '눈물 공양'에서 본 바와 같이 자리행과 이타행은 둘이 아닌 하나로 화쟁 관계를 이루고 있다.

 

모두가 이겨라 이겨라고 부추길 때
내게 지라고 가르친 건
세상에서 오직 시 뿐

한때 시여 무기가 된 적도 있었던가

독약처럼 쓰디 쓴 율법으로
가장 낮은 몸짓으로

말씀의 절집에
들라 하시네

- '시(詩)' 전문

 

화쟁은 맞저울 장대 위에 놓여 있다. 한편 저울판에는 싸워서 이기는 무기인 시가 놓여 있고 다른 저울판에는 싸워서 지는 시가 놓여 있다. 그런데 길항 관계를 이루는 양항은 '독약처럼 쓰디쓴 율법' '가장 낮은 몸짓'이 서로 화쟁하면서 '말씀의 절집'으로 들어간다.

 

눈보라 는개비 저녁놀
지나가는 바람 나그네
별빛 달빛 고루 버무린
구름 나그네
모두가 친구요 스승이지만
함부로 목매달지 않는 고집
속으로만 떨구는 맑고 그윽한
눈물 한 줄금

- '미황사 풍경 소리' 전문

 

시에서 장대의 화쟁은 '함부로 목매달지 않는 고집'이다. 이 고집 양편에 '눈보라 는개비 저녁놀 지나가는 바람 나그네 별빛 달빛 고루 버무린 구름 나그네' 등은 서로 목매달지 않는 고집으로 화쟁을 한다. 그래서 저들은 친구가 되고 스승이 된다. 이러한 이미지의 총체가 '속으로만 떨구는 맑고 그윽한 눈물 한 줄금'인데 이 눈물이 바로 미황사 풍경 소리이다. 여기서 풍경 소리는 미황사 창건 설화의 '소 등에 불상과 경전을 싣고 가다가 마지막으로 머문 곳에 지은 절'에서 들리는 황소울음 소리와 겹친 짜임새를 이루고 있다.

 

이팝꽃 튀고 있다
아 봐라, 저 봐라
왁자그르 진저리를 치고 있다

눈멀미 나도록 환하다

깨금발로 건너뛰는 풋잠 세월
너를 만나 삼가 첫눈 맞추니
네 매초롬한 무늬, 함치르르한 속결에
내 맘 저당잡히니

그 품내 중모리로 감긴다
평생 남그윽한 감옥에 든다

- '무제' 전문

 

1970년대 중반쯤이었을 것이다. 박노정이 청주로 김규영을 만나러 왔다. 충청북도 문인들과 중앙초등학교에서 축구 시합을 하였다. 1984년 내가 진주에 갔을 때 박노정을 다시 만났다. 무량사 비구로 수행 중이었던 박노정이 무슨 까닭으로 환속을 하였는지는 모르나 삼천포 어느 기와집에 기거를 하면서 귀신과 눈을 부릅뜨고 싸웠다고 한다. 그 뒤 아내를 맞아 가정을 꾸몄으나 가족을 위해 한 번도 경제생활을 한 적이 없다. 심지어 자녀가 어느 대학에 다니는지 무슨 과를 선택했는지도 모르고 일생을 살았다. 아내에게 미안했을 것이다.

시인은 결 고운 예쁜 시를 써 놓고 있다. 사랑과 신뢰를 절제 있고 품위 있게 형상화하였다. 시에서 이팝나무꽃은 물론 시인의 아내가 될 터이다. 그런데 그 이팝나무꽃인 아내는 튀는 꽃이고 왁자그르 진저리를 치는 꽃이고 눈멀미 나도록 환한 꽃이다. 그래서 시인은 외친다. '아 봐라, 저 봐라' 아내를 만나 삼가 첫눈 맞춘 시절은 깨금발로 건너뛰는 풋잠 세월이었다. 시에서 마음을 '저당잡힌다', 마음이 '중모리로 감긴다' '감옥에 든다'는 역설이 성립되는 까닭은 아내의 매초롬한 무늬, 함치르르한 속결 때문이다. 시에서 화쟁은 아내를 향한 절절한 마음이다.

 

아직도 별밭에서
눈먼 시인으로
가물거릴 뿐이지만
오랜 세월 떠돌이로
볼 장 다 본 듯싶어

나 이제
운주사 와불처럼
아주 드러눕고 싶다네
천 년을 귀머거리로
다시는 일어나고 싶지 않다네
느닷없는 살을 맞고 싶다네

- '살(煞)을 맞다' 전문

 

▲ 신경득 경상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br /><br /> /경남도민일보 DB
▲ 신경득 경상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경남도민일보 DB

시인은 피곤하다. 세상이 싫다. 그래서 운주사 와불처럼 눕고 싶다고 한다. 다시는 일어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시에서 화쟁은 드러눕다이다.

가을문예 관계로 진주에 다녀온 소설가 정연승이 박노정의 병세가 심상치 않다고 하였다. 2017년 부슬비가 내리는 여름날 마지막으로 시인을 만났다. 시인은 나에게 구기자차 한 봉지를 주었다. 전화를 걸면 늘 괜찮다고 하였지만 목소리가 잦아들고 숨이 가빴다. 시를 낭송할 때 손이 떨린다고 이우기가 말했다. 며칠 동안 함께 지내고 온 정연승이 들고나는 의식이 분명치가 않다고 하였다. 2018년 7월 4일 박노정은 해탈 열반하였다. 가진 것이 없으니 비울 것도 채울 것도 없었다. 여기서 해탈 열반이란 공적한 중도를 이름이고 시인의 생애가 시중하고 적절하였다는 말이다. 시인의 일생은 적중하였다.

아마도 화개리에서 하동으로 흐르는 섬진강가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토란잎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구례에서 화개리로 흐르는 백운산 자태를 곱게 담근 섬진강이었을 것이다. 문득 후두둑 빗방울 듣는 소리를 듣는다. 사람아 가는가.

'불회사'를 차운한다.

법문을 해얄긴데 사람이 있어야제
법문은 무신 놈의 법문
요로코롬 돌팍에 앉아
하늘에 뜬구름이나 보지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