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가 열심히 가꾸면 튼실한 열매 맺듯
취업시장도 노력만큼 대우받는 게 기본

농사를 지은 지 몇 해째다. 쉰 넘어 농사를 짓자고 덤볐으니 마을 어른들이 '그래 요놈아 농사는 쉬운 줄 아느냐'라는 안쓰러운 눈치가 상당했던 모양이었다.

첫해 농사는 그럭저럭 짓긴 했는데 가격 폭락으로 시름겨워할 때 세상만사가 뜻대로 되는 줄 아냐는 걱정도 들었다. 다음 해는 잘 지어 보려고 애도 쓰고 궁리도 많았는데, 오며 가며 전년보다는 사람이 영 달라졌다며 그래도 농사는 해운, 즉 그해 농사 운수도 좋아야 한다는 짠한 말씀들을 하시곤 했다.

어른들 말씀대로 농사는 열심히 짓는다고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다. 일기가 좋아야 하고 가격도 좋아야 한다. 하지만 농사꾼들이 그것을 모두 염두에 두고 씨앗을 뿌리지는 못할 것이다. 묵묵히 작물이 잘되도록 해 주는 것이 전부이고 그해 해운은 그야말로 운수로 치부하는 것이다.

다행히 작황도 좋고 가격도 좋아서 전해 땜은 되어 안도가 되었지만 그보다 더 뿌듯했던 것은 마을 어른들의 노력에 대한 평가였다. 뿌린 대로 거두었으니 그보다 더 족할 순 없는 것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 농사라는 것인데 농업이 천하의 천덕꾸러기가 된 줄도, 농사꾼이 천하의 근본을 운운할 처지가 아님도 아는 처지에 이 말을 새삼스레 떠올리는 것은 땅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는 이치 때문이다. 열심히 가꾸면 튼실한 열매를 주는 것이 농사이다. 그러니 이런 뜻으로도 농자천하지대본을 뇌어보는 것이다.

요즘 나라 안이 '인국공'으로 떠들썩하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 것이 논란이 되었는데 청년들 앞날이 캄캄하니 갑론을박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누구의 말이 옳다고 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지탱해온 근본적인 가치에 드잡이하듯 멱살잡이하고 내동댕이치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다. 노력한 자가 성공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농사의 해운처럼 정권을 잘 만나서 정규직이 되었다는 논리는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이 된 사람들의 노력까지 뭉개지는 것이다.

자식 농사도 그렇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잘 기르는 것을 뜻하는 말인 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농사가 그렇듯 어떻게 기르는 것이 잘한 것인지 정답은 없다. 하지만 우리네 부모들은 제 몸으로 이루는 것이 아닌 탓에 자식들에게 열심히 하라는 말을 달고 산다. 특히 공부에 원이 맺혀서인지 배움의 시기에 있는 자식들에게는 더욱더 그렇다. 그래서인가 요즘 아이들은 정말 영특하다. 부모들 입장에서는 열매가 좋으니 큰기침해도 좋을 만한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제값을 못 받고 있다. 무슨 입사시험이건 수십 대 일의 경쟁을 해야 한다. 노량진이 미어터지고 있는데도 나라는 뚜렷한 대책이 없다. 겨우 공무원 늘리고 공사부터 정규직 늘리는 것인데 그것도 말이 많다. 열심히 공부해도 대접 못 받는 걸 아는 자녀들이 부모 말을 들을까.

노력이 무시당하니 우리 사회는 곳곳이 왜곡투성이다. 노력한 만큼 대우받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지 그런 가치는 무시당해 왔다.

농사꾼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작물 하나하나를 일일이 손볼 수는 없다.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 정부가 할 일도 그렇다고 본다. 노력한 보람이 넘치고 직업에 따른 신분 갈음이 없는 사회, 편한 것보다 노력이 대접받는 사회로 가는 길을 넓혀주면 되는 것이다. 소위 위정자 중 땀 흘려 노력하여 결실의 기쁨을 본 이들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이런 평범한 이치도 간 곳이 없는 듯해서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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