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도석 선생이 쓴 한시 3점 불에 타 사라질 위기 딛고 마산문학관 특별기획 전시
한학 연구자 고증 번역본 원본·유품과 함께 내걸어 업적·지역 독립운동 조명

지난 13일부터 마산문학관에서 독립운동가 허당 명도석 선생 유작 한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올해 창원시 통합 1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기획전이다. 허당 선생의 한시를 중심으로 전시가 이뤄지는 게 보기 드문 일이기도 하고, 이번 전시에 처음 공개되는 선생의 유품도 있어 제법 들여다볼 만하다.

전시된 한시는 사월청화(四月淸和), 추등추산(秋登騶山), 추일등산(秋日登山) 모두 3수다. 허당이 남긴 한시는 이게 전부다. 한시에 관심 많은 것으로 알려진 허당 선생이 지은 한시가 3수뿐일 리는 없다. 하지만, 1954년 별세 당시 유품 정리 과정에서 실수로 대부분 불태워졌다. 그나마 3수나마 건진 사연을 전시장 개막식에 참석한 허당 선생의 손자 명유진 씨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며칠 후 마당에 드럼통을 두고 고인의 물건 중에 쓸모없는 것들을 태우고 있었어요. 그때 평소 알고 지내던 옆집 어린 아들이 놀러 왔는데, 할아버지 방에 갔다가 나무 궤짝을 하나 발견했어요. 열어보니까 붓글씨가 적힌 흰 종이들이 둘둘 말려서 가득 들어 있더랍니다. 당시 할머니한테 물어봤더니 중요한 문서가 아닌 것 같으니 그냥 태우라 그러셨대요. 그렇게 거의 다 태웠을 즈음 학식이 있으신 지인이 보시더니 바닥에 깔린 한지 3장을 겨우 건져서 제 어머니(선생의 큰며느리)한테 혹시 모르니 이걸 보관하고 있으라고 하셨어요."

▲ 마산문학관에 전시 중인 독립운동가 허당 명도석 선생 유작 한시 추일등산(秋日登山·가을날 산에 올라). /이서후 기자
▲ 마산문학관에 전시 중인 독립운동가 허당 명도석 선생 유작 한시 추일등산(秋日登山·가을날 산에 올라). /이서후 기자

세월이 흘러 어머니가 명 씨에게 한지 3장이 담긴 봉투를 내밀며 이게 뭔지 모르겠지만 한번 살펴보라고 했다. 명 씨가 보니 할아버지께서 쓴 한시였다. 할아버지가 한시를 썼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던 명 씨로서는 깜짝 놀랄 일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명 씨는 그때 몽땅 태워진 종이 뭉치들이 모두 허당이 쓴 문장들이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때 궤짝에 든 문건들이 다 남았으면 허당 문집을 만들수 있었는데 아쉬움이 큽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3편이 남았네요."

명 씨가 가지고 있던 허당 선생의 한시를 세상에 알린 이는 1960년대 당시 <경남매일>에서 기자로 일하던 김용복 시인이었다. 당시 그는 '마산의 명가'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연재하고 있었는데, 1968년 4월 13일 자에 허당 명도석 선생을 소개했다. 당시 취재를 하면서 허당이 쓴 한시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마산문학관에 전시 중인 독립운동가 허당 명도석 선생 유작 한시 추등추산(秋登騶山·가을 추산에 올라). /이서후 기자
▲ 마산문학관에 전시 중인 독립운동가 허당 명도석 선생 유작 한시 추등추산(秋登騶山·가을 추산에 올라). /이서후 기자

"나는 오래전 마산의 명가를 찾아본 적이 있다. 그때 허당 선생을 알게 되어 흠모하며 지내던 중에 지난봄 선생의 시 유묵(遺墨·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수소문 끝에 이를 보관하고 있던 손자 명유진 씨로부터 두루마리 화선지에 쓴 시 세 편을 보게 되었다. 단아하면서도 굳은 의지가 배인 세련된 필치 속에 깊은 서정을 담은 시편들이었다." - 2019년 마산문협 사화집(제6집) <마산사랑, 꿈을 키우다> 김용복 시인의 글 중에서.

이번 전시를 기획한 마산문학관 조재영 학예사 역시 김용복 시인에게서 허당의 한시를 소개받았다. 한시 일부는 번역되어 자료로 쓰이거나 책에 실리기도 했다. 그런데 번역본마다 약간의 해석의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 전시를 위해 김복근 시인이 총괄해 번역을 깔끔하게 정리해 완성본을 만들었다. 김 시인은 "한학을 전공한 교수 세 분과 저명한 시인께 고증을 받아 번역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조현판 서예가가 완성된 번역을 한글 붓글씨로 썼다. 이렇게 허당 한시 영인본, 번역본까지 다 갖춰졌다. 하지만, 한시 3수만으로는 전시가 지나치게 단출할 것 같았다. 그래서 허당이 남긴 유품들까지 함께 전시를 구성했다.

▲ 마산문학관에 전시 중인 독립운동가 허당 명도석 선생 유작 한시 사월청화(四月淸和·청화한 사월). /이서후 기자
▲ 마산문학관에 전시 중인 독립운동가 허당 명도석 선생 유작 한시 사월청화(四月淸和·청화한 사월). /이서후 기자

유품 중에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 있는데, 먼저 허당의 환갑을 축하하는 글을 모은 수첩(壽帖)이다. 1945년 음력 4월 3일 환갑을 맞은 허당에게 옥기환 1대 마산시장 등 명사 40여 명이 남긴 축하 글이 담겼다. 또 허당 큰며느리가 시집올 때 며느리집으로 보낸 사성(四星)이 있다. 사성은 혼인이 정해진 뒤 신랑집에서 신붓집으로 신랑의 사주를 적어서 보내는 종이를 말한다.

조재영 학예사는 "이번 기획전은 허당 선생의 유작시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분의 생애를 통해 우리 지역 독립운동사까지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7월 19일까지다. 문의 마산문학관 055-225-7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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