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선물 안 받기 운동 전개
경매 나온 공원 시민에 돌려줘
김태호 퇴진투쟁 때 해임 고초

'영혼 있는 공무원!'

임종만 창원시 마산합포구 수산산림과 계장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그가 34년 공직생활을 마치고 30일 일반 시민으로 돌아간다. 지난 26일 마산합포구 한 커피숍에서 임 씨를 만났다.

멋들어진 콧수염을 기른 그는 노신사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웬만해서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 공무원 사회에서 특이한 존재였다. 할 말은 참지 않고, 할 일은 마다하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전국공무원노조가 출범할 즈음 그는 마산시지부와 경남지역본부 핵심 구성원으로 활동했다. 공무원이 공직사회 부패를 청산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며 '명절 선물 안받기 운동'을 이끌었다.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가 인사협약을 어기고 낙하산 인사를 시군구에 내리꽂자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해임을 당했다가 법적 분쟁 끝에 복직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임업직 공무원이 그의 본 업무였다. 지난 2005년 경매에 나온 마산합포구 자산동 솔밭공원을 시민 품으로 돌려주었다. 당시 마산시가 공원을 사들일 것을 처음 주장하고, 시의회를 설득했다. 이 일로 그는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에서 주는 녹색환경인상을 받았다.

원래 공무원이 될 생각은 없었다. 축산대학을 나와 인공수정 일을 했지만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후 '펜으로 먹고살아라'는 어머니 말씀과 남편으로서의 책임감으로 1986년 공무원을 선택했다. 그는 "진작 공무원이 된 또래 친구들과 부딪히는 게 싫어 임업직 시험을 쳤다"고 했다. 친구들이 있는 면사무소가 아니라 군청에서 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작은 면사무소였다. 그는 "그때만 해도 여느 공무원과 다름없었다"고 했다. 밥도 얻어먹고, 들어오는 돈도 받았다. 선배들이 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 공무원은 원래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 공무원노조 1세대인 임종만 씨는 30일 퇴직을 앞두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 공무원노조 1세대인 임종만 씨는 30일 퇴직을 앞두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그런 임 씨 인생관을 뒤흔드는 사건이 벌어졌다. 마산시에서 녹지직으로 일할 때였다. 밤밭고개에서 덕동환경시설사업소까지 분뇨차량이 지나갈 임도를 내는 과정에서 담당 과장의 결재가 계속 반려됐다. 동료들은 결재서류 속에 있어야 할 '무언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결국, 5번째 결재서류를 내밀었지만 과장은 말없이 밀어냈다. "과장님 왜 이러십니까?" 하고 버티고 선 임 씨에게 돌아온 말은 '이 호로자식(호래자식)이'라는 욕설이었다. 마침 아버지를 여의었던 그는 담당 과장의 멱살을 잡았다. 이때부터 그는 공무원으로서의 자세를 가다듬었다. 개인 영달이나 권력이 아니라 시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가치관을 굳혔다.

마침 2000년 공무원직장협의회가 출범하였다. 임 씨는 자청해서 협의회에 합류했다. 이후 전국 공무원노조 투쟁을 선도했던 마산지부와 경남본부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임 씨는 "가장 힘들었던 때는 전국 공무원노조 동지들이 하나둘 해임당하고 고초를 겪을 때였다"고 했다. 2006년 동료들이 공무원노조 활동으로 일터를 떠날 때 혼자 무사하다는 죄책감이 그를 괴롭혔다. 2007년 끝내 그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경남도가 '인사협약 위반한 김태호 도지사 퇴진투쟁 선포 기자회견'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그를 해임했다. 그는 "나도 동료들 옆에 섰다는 생각에 오히려 기뻤다"고 했다.

임 씨는 공직생활을 돌이켜보며 후배들의 권리를 늘린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는 "지금 임용되는 공무원들은 모르겠지만, 지금 당연한 육아휴직· 당직 대체휴무 같은 것들도 당시엔 제도적으로 미미하거나 없었다"고 했다. 임 씨가 파면당한 계기가 됐던 경남도의 낙하산 인사 관행도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꿈같은 일이었던 외국 연수도 당시 만들어졌다. 선진 행정을 배워올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 임 씨는 대부분의 중앙교섭 초안이 마산에서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는 "당시 전국 공무원들이 출근하면 맨 처음 하는 일이 공무원노조 마산시지부 홈페이지에 들르는 것이었다. 이슈가 있을 때는 하루 8000여명이나 접속하였고 홈페이지 광고도 붙었다"며 옛일을 떠올렸다.

임 씨는 요즘 텃밭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녹지직으로 일을 시작한 건 우연이었지만, 원래 자연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래서 호도 수풀 림, 말 마 자를 써서 '임마'라고 지었다. 임 씨는 "평생 규칙적으로 생활했는데 퇴직하면 일상이 깨지게 될 것"이라며 "무력감에 빠지지 않고 인생 2막의 규칙을 정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시민운동에 참여할 계획도 있다.

마창진환경련은 지난 2월 임종만씨를 신임 공동의장에 선임했다. 임 씨는 "나무를 사랑하고, 시민운동도 하며 앞으로도 무료하게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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