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걱정하는 친구 편지에 먹먹
나의 인생 파도를 잘 탈 수 있길

며칠 전에 집으로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하얀 편지 봉투 위에 주소가 쓰여 있었는데 꾸물꾸물한 필체가 영락없이 대학 동기인 송의 것이었다. 안에 들어 있는 편지지도 송의 취향 그대로 단순하고 귀여웠다. 편지글은 유월의 더위 이야기로 시작해, 칠월에 있을 자격시험, 그리고 코로나로 달라질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졌다.

송이 편지를 부친 곳은 그의 고향이자 나의 이웃 도시였다. 서울에서 고향으로 잠시 돌아온 송은 막막한 심정이 짙어진다고 썼다. 송과 마지막으로 놀았던 지난 겨울날이 떠올랐다. 송은 그동안 착실히 모은 돈으로 서울에 방을 구했고 곧 이사할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꿈을 이루러 떠난다는 사실과 어쨌든 이 도시를 떠난다는 사실에 그만 마음이 먹먹해졌다.

나는 아직 고향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다. 학생 때는 집에서 가까운 초·중·고등학교에 다녔다. 하천을 따라 세 학교가 줄줄이 있었는데 평지에 초등학교가, 그 옆의 중학교를 지나 하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등학교가 있었다. 십이 년 동안 같은 길로 등하교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 도시를 벗어날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생 때 만난 동기들은 대부분 다른 지역 출신이었다. 버스로 왕복 두 시간 넘게 걸리는 이웃 도시에서 통학하는 동기가 꽤 많았다. 송도 그중 하나였다. 꿈 많은 청년답게 우리는 으레 서울에 취업하리라 생각했고 가장 적극적으로 서울행을 계획했던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동기들 가운데 가장 먼저 대학을 졸업해서 이번엔 집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회사에 취직한 사람도 바로 나였다.

이제 나의 동기들은 저마다 타지에서 분투하고 있다. 대부분 서울에 진출해서 모두 모이는 일은 연중행사가 되었다. 절친했던 친구들이 서울에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도 문득, 나만 고향에서 젊음을 묵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남들처럼 서울로 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숙제처럼 박여있는 것 같다. 그래서 송이 서울에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왠지 뒤에 남겨진 사람의 마음이 되었다.

편지의 말미에서 송은 '사는 건 큰 파도를 타는 것과 비슷하다'는 문장을 알려주었다. 그 문장이 마음에 콕 박혀 '나는 지금 파도를 잘 타고 있는 걸까,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이런저런 영상 콘텐츠를 볼 때, 심지어는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올라온 지인의 일상을 볼 때도 나는 남의 파도에 자꾸만 몸을 던지게 된다.

그저께 근처 동네에 볼일이 있어 공영 자전거를 타고 집 주변 길을 달렸다. 여름 볕에 둘러싸인 가로수들이 새잎으로 무성했다. 코로나 사태로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서 낯선 것들에 둘러싸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십수 년을 오갔던 거리에서 예상치 못하게 여행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자전거를 몰고 가면서 그날만 볼 수 있는 고향 풍경을 마음껏 즐겼다. 비로소 나의 파도를 타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타인의 삶을 내 것과 비교하며 슬퍼지는 것은 무지와 욕망이 빚어낸 불행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가 있다면, 송이 보낸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꼭 전하고 싶다. '일렁이는 물살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더 많기를 바라. 다음에 또 편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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