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남쪽 바다와 나지막한 섬산과 물결 출렁이는 강반은 남방적인 문화의 토양을 일구어내고 있어 피난 예술인들에게는 격동의 시기를 낭만으로 이겨내게 했다.

피난 생활의 고뇌 속에서도 해양문화와 연결된 남방문화의 고장인 부산·마산을 제2 고향으로 삼고 열정적인 전시 활동과 지역사회의 교육문화에 기여했다. 그러면서 지역 토박이 작가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남방 미술문화의 개화를 열어나갔다.

남쪽의 항구도시 부산·마산으로 남하한 피난 작가들은 국방부 산하의 종군 화가단에 의한 전쟁기록화전, 대한미술협회전을 끌어내기도 했다. 또한 향토 토박이 작가들과 친밀한 교분 속에서 '후반기 동인전'은 월남 작가인 한묵과 문신·이준 등이 새로운 조형 어법을 구사한 특기할 만한 전시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1951년부터 피난 작가들이 주축이 되어 다방가에서 활발한 전시가 이어졌다. 월남미술인전, 이동미술전, 3·1절기념전, 종군화가단전, 해양미술전, 대한미협전시미술전, 전시기록미술전, 해군종군화가전과 남관·박영수·김인승·박영선·박득순·서성찬·임호·백여수·김훈·권옥연 등이다. 1952년에는 3·1절경축미전, 대한미협전(4회), 출판미술전, 종군화가전(4회), 해군종군화가전(34회), 신재파전 등과 김환기·문신·도상봉·김원 등이다. 4회 종군화가전의 단장은 이마동, 부단장은 김병기, 사무장은 이세득이고, 이중섭·박영선·김인승·박득순·박고석·송해수·한묵·문신·이준·장욱진·권옥연 등이다.

이 시기의 화단은 대한미협과 한국미협으로 양분되어 우리 화단사에 던지는 충격이 컸었다. 1953년에도 비중 있는 문신·양달석·이준·이마동·정규·박고석·황염수·전혁림·백영수·차창덕·김종식 개인전과 대한미협전, 5회 미협전, 1회 현대미술작가전, 3회 신사실파전, 기조동인전이 있었고, 향토의 토박이 작가들의 토벽동인전이 있었다. 피난 작가들의 왕성한 전시에 자극받아 리얼리즘의 경향으로 향토색 짙은 전시를 한 이들은 서성찬·김종식·임호·김윤문·김경 등이다. 또 피난 작가들의 영향을 받아 마산에서는 뒤늦은 1955년에 흑마회(黑馬會)전으로 전국 최초의 가두전이 있었고, 피난 작가 최영림도 몇 차례 참여하였다.

전란기의 암울한 시간을 예술인들은 술자리 낭만과 회포로 풀었는데, 대구의 성구나무집, 부산의 광복동 대학촌, 마산의 부림동 고모령은 유명하다. 마산의 정월보름 대동제가 이 고모령에서 발현되었고, 진해의 흑백다방은 예술인들의 안방 클래식 음악의 진원지가 되었다.

1953년 휴전협정 후 수도권역으로 거의 환도하였지만 잔류 예술인들은 남방적인 문화토양 속에서 지역문화와 교육 미술에 기여한 흔적이 다대하다.

부산의 조동벽과 염태진은 국립부산사범대학 미술학과 교수로서 미술 인구 육성에 기여하였고, 부산미술의 거장으로 역할을 하였다. 송해수·나건파 역시 부산의 작가 양성과 미술문화의 외연 확장에 기여한 바 크다. 마산의 최영림은 흑색시대 10년을 마산에서 보내면서 흑마회전과 개인전 등은 물론 미술교육에 종사하다가 수도권의 서라벌예술대 등지로 떠났다. 마산의 강신석은 파스텔화의 선구자로서 활동한 바가 크다. 진해의 유택렬은 흑백다방을 경영하면서 흑백 공간을 예술문화의 온상지로 삼아 흑백동인회를 결성하고 군항제의 대부로서 지역문화에 기여한 바 크며 그 족적은 확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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