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쓰다 버릴 하나의 사물일 뿐이어도
내 마음을 주면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당근을 씻다가 문득 당근을 그리는 화가가 생각났다.

지금 씻고 있는 싱싱한 당근이 아닌 오래 방치하여 싹이 나거나 쪼그라져 먹을 수 없는 당근 그림을 다양하게 그리는 그녀의 전시회를 몇 년 전 다녀왔다. 그녀의 집에서 당근 작품도 선물 받았다. 그림이 아닌 그녀가 손바느질로 한땀 한땀 만든 여러 개의 당근 작품이 내가 늘 볼 수 있는 장식장 위에 놓여 있다.

하이데거는 사물과 사물의 존재는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당근 역시 우리가 먹는 식재료에서 벗어나 있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사물인 것이었다. 그녀에게 당근이라는 사물은 음식 재료가 아닌 당근이라는 존재 자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왜 당근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흔쾌히 내게 말해 주었다. 그림을 그리던 어느 날, 베란다에 당근들이 쪼그라져 있는데 가는 하얀 실 같은 싹들이 당근 여기저기 올라오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 당근들을 자세히 보면서 생명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오래 당근을 방치해 둔 자신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당근으로부터 어떠한 생명력을 느끼게 되면서 당근을 소재로 한 그림을 몇 년간 그렸다고 한다. 그 당시 자신도 잠시 작품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할 때였는데 보잘것없이 버려진 당근을 보며 많은 위안과 힘을 얻었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그리는 사람의 수많은 생각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베란다에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되어 썩었다고 생각한 당근이 썩지 않고 "나 여기 있어요"라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 준 것 같다고 한다.

당근은 그녀의 손을 통해 그녀의 삶의 궤적을 보여주고 새로운 사물로 탄생하여 전시회를 빛나게 한 것 같았다. 당근이 그저 하나의 사물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현실의 세계에서 볼 수 있고 겪을 수 있는 삶의 흔적을 드러낸다는 것에 나는 그림 앞에서 발걸음을 몇 번이나 멈추었다.

모든 예술은 숨겨진 존재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어서 은폐된 사물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의 힘이 아닐까.

생명이란 이토록 작고 보잘것없이 버려진 곳에서도 이어나간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아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버려진 당근이나 고구마·감자의 싹을 보며 생명을 느껴보자고 말하고 싶다.

우리 곁에는 우리와 시간을 함께한 물건들이 많을 것이다. 사물은 그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하나의 사물을 뜻한다고 한다.

물건마다 오랜 추억을 가진 것도 있을 것이지만 선뜻 버리지 못해 서랍 속에 방치해 둔 몇몇의 물건도 있을 것이다. 그냥 버리고 마음 하나 주지 않으면 하나의 사물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유난히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가는 물건이 있다면 그 물건은 우리에게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마치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이름을 불러주면 나에게 와서 꽃이 되듯이 무의미한 존재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하나하나의 물건마다 사물이 아닌 사물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하이데거를 생각하며 그녀의 당근을 가만히 바라보는 여름날의 오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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