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서로 위로하는 다른 나라 주민들
위기 때 문화예술 어떤 의미인가 보여줘

코로나바이러스가 이탈리아 반도를 휩쓸던 지난 3월 17일 하루 사망자가 349명을 기록하면서 누적 사망자가 2000명을 넘어섰다. 곳곳에서 절망의 탄식과 동양인을 탓하는 원망의 목소리가 넘쳐났다.

그러나 주택가 골목은 뉴스 보도와 사뭇 달랐다. 그날 오후 수도 로마의 한 골목에서는 이탈리아 국민 저항가인 '안녕 내사랑(Bella Ciao)'이 울려 퍼졌다. 창문을 열고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동네 주민들은 손뼉을 치며 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안녕 내 사랑'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북이탈리아에서 파시스트와 나치들에 맞서 저항한 레지스탕스를 기리는 노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사랑하는 동료들이 서로의 희생을 기억해주기 바라는 내용이다. 이 노래는 스페인에서 방영된 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된 드라마 <종이의 집>에서도 주제가처럼 불리며 다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3월 17일 로마 주택가에서 이 노래를 함께 불렀던 주민들은 파시즘에 저항한 선배들처럼 코로나바이러스를 함께 극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3월 23일 코로나 불씨가 옮겨붙은 스페인 마요르카섬의 알가이다 마을 주택가에 경찰차 두 대가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면서 들이닥쳤다. 신속하게 차에서 내린 경찰들은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위치를 잡은 뒤 일제히 주민들을 창가로 불러냈다. 리더로 보이는 경찰 손에는 곤봉 대신 기타가 쥐어져 있었다. 무선 마이크까지 장착한 그가 하나둘셋 리듬을 타면서 기타 연주를 시작하자 함께 간 동료들이 율동을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그들이 부른 노래는 카탈루냐 지방 전통 동요인 '꼬마 조안이 춤출 때(En Joan petit quan balla)'였다. 코로나로 봉쇄된 마을에서 어린이들이 혹시 지겨워할까 봐 지역 경찰 누군가가 제안한 아이디어였다.

율동을 선보인 경찰들이나, 이를 지켜보는 아이들의 조부모 세대 모두 어릴 때 이 노래를 부르며 자랐을 것이다. 이 노래 덕분에 금세 마을에 생기가 돌고 그 행복한 기운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세계로 번져나갔다.

위 두 사례 말고도 봉쇄된 도시에서 노래와 춤을 통해 서로를 격려하는 수많은 영상이 인터넷을 타고 소개됐다. 노래와 춤은 고립된 개인들에게 여전히 연결돼 있음을 확인해주는 중요한 매체였다. 비록 발코니를 벗어날 순 없었지만 같이 노래 부르고 춤추며 그들은 새삼 공동체를 확인하고 봉쇄를 버텨낼 위로와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요컨대 이 영상들은 문화예술이 이 시대에 왜 필요한지를,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문화예술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잘 보여줬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른바 'K방역'이란 이름으로 우리의 방역 모델이 세계적인 칭송을 받고는 있는데, 그 와중에 문화예술은 어디에 있었을까? 31번 확진자가 나온 이후 대구가 거의 봉쇄되다시피 했을 때 어떤 노래와 춤이 대구시민의 위로가 된 적이 있었나? 창원 한마음병원 간호사가 확진 판정을 받고 경남 전체가 패닉에 빠졌을 때, 우리 모두를 공동체로 결속시켜주는 문화예술 활동이 있었나?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어린이집과 유치원부터 문화예술을 배우고 익힌다. 초중고에는 교과 과목으로 편성돼 있다. 대학에는 다양한 전공들이 포진해 있다. 시내 곳곳에 문화예술 인프라가 있고, 지자체는 적지 않은 예산을 책정해 다양한 문화예술지원사업을 펼친다.

그 긴 시간의 교육과 다양한 지원사업에도, 왜 우리의 코로나 장면에는 문화예술이 시민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지 못했을까? 우리에게 문화예술은 과연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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