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서 감금 생활 진술 식사·집안일 때만 풀어줘
"밥은 하루 1끼 정도만 먹고 물 속에 담가 숨 못쉬게 해"
경찰 집에서 학대도구 압수 계부·친모 강제수사 검토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마라.' 스페인 교육자 프란시스코 페레가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그러나 아동학대는 끊이지 않습니다. 최근 잇따른 심각한 아동학대 혐의 사건이 알려지면서, 또다시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창녕에서 9살짜리 한 아이가 맨발로 도로에서 뛰어다니다 이를 본 주민이 이상하게 여겨 신고를 했습니다. 이후 계부와 친모의 아동학대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혐의는 모두 입증되지 않았습니다만, 아이가 진술한 내용만 봐도 참담할 지경입니다.

"집에 돌아가기 싫어요."

창녕 아동학대 혐의 사건 피해아동(9)의 진술이다. 아이가 아동보호전문기관·경찰 등에 진술한 내용을 보면 계부와 친모로부터 심한 학대를 당했다. 현재 아이는 부모와 분리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쇠사슬에 묶여 = 아이의 진술이 시간과 장소·기간 등 부분에서 매우 구체적이진 않다. 다만, 진술분석 전문가는 "신빙성이 있고, 아동학대를 당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진술"이라고 했다.

아이는 집 발코니에서 쇠사슬로 묶여 지냈다. 아이의 목을 감은 쇠사슬은 발코니에 묶여 있었고, 아이와 발코니 쇠사슬 양쪽 끝은 모두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구체적인 기간을 특정할 순 없으나 쇠사슬로 묶여 테라스에서 하루 1끼 정도만 밥을 먹었다. 자신만 홀로 집 다락방에서 지냈다는 진술도 있다.

또 물을 채운 욕조에 담겨 숨을 쉬지 못하도록 학대를 당하기도 했다. 계부가 시켜 지문을 알 수 없도록 프라이팬에 손을 지져야 했고, 쇠로 추정되는 막대기와 빨래 건조대 등으로 맞아야 했다. 글루건으로 발등, 달궈진 쇠젓가락으로 발바닥이 지져졌다.

아이는 신체에 다수 골절의 흔적이 있었고, 심한 빈혈 증세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또 눈 부위에 멍이 있었고, 손과 발에서 화상 흔적이 발견됐다. 목과 등에도 상처가 있었다.

경찰은 해당 집에서 쇠사슬·자물쇠·글루건·프라이팬·효자손·막대기 등 학대 도구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는 6가지 물품을 압수했다.

▲ 최근 계부와 친모에게 학대당한 것으로 알려진 창녕의 한 초등학생이 지난달 29일 창녕 한 편의점에서 최초 경찰 신고자(왼쪽)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최근 계부와 친모에게 학대당한 것으로 알려진 창녕의 한 초등학생이 지난달 29일 창녕 한 편의점에서 최초 경찰 신고자(왼쪽)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목숨 건 탈출 = 아이는 발코니를 통해 옆집으로 넘어가 탈출했다. 4층 집에서 발코니 바깥에 매달려 약 30~50㎝로 추정되는 벽을 넘어 옆집으로 갔다. 아이는 밥을 먹을 때나 집안일을 해야 할 때는 쇠사슬에 묶이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오후 아이는 엄마와 다른 자녀가 집안에 있을 때 잠옷 바람으로 옆집으로 넘어갔다. 옆집에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탈출했다. 아이는 맨발이었다.

이어 이날 오후 6시 20분께 도로를 뛰어가다 한 주민이 경찰에 신고해 사건이 알려지게 됐다.

아이가 만약 발코니에서 자칫 발을 헛디뎌 떨어졌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굶주리고 쇠사슬에 묶였던 아이에게는 그만큼 필사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사 어떻게 = 경찰은 아이를 학대한 혐의로 계부와 친모에 대한 강제수사도 검토하고 있다.

경찰은 계부는 한 차례 조사했고, 11일 친모를 조사할 예정이었으나 연기하기로 했다. 전날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이 아이의 의붓동생 3명에 대한 임시보호 명령을 해 분리 조치를 했는데, 그러자 계부와 친모가 자해를 해서 응급입원 조치가 되어서다. 경찰은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응급입원은 최대 72시간까지 가능하고, 행정입원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계부는 아이를 폭행한 것에 대해 일부는 인정하지만, 아이가 진술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1차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에 따르면 계부와 친모는 긴급체포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현장에서 학대를 곧바로 목격한 것이 아니어서 긴급성이 없고, 혐의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부모가 일단 조사에 협조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과 협의해서 강제수사를 검토하겠다"며 "아이와 계부·친모의 진술이 일부 엇갈리는 부분이 있는데, 모두 철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한편, 아이의 친모는 조현병으로 치료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소 정신보건대상자 관리기록을 살펴봤을 때 약 4년 전부터 상담과 관리를 받았다. 그러나 막내 아이를 임신하면서 약 1년간 약 복용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부부 사이에서 난 나머지 3명의 자녀는 인근 밀양지역 한 기관에서 보호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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