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들 원형 훼손 우려
전문가 "핵심 가치는 위치"
담장 등 건축적 의미도 커

마산역사문화유산보전회는 지난달 22일 '지하련 주택 이대로 사라지게 할 것인가' 주제의 긴급토론회에서 "창원시가 지하련 주택을 사들여 현지 보존해야 문학사적, 독립운동사적 의미를 이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창원시 경관심의위원회가 마산합포구 상남산호재개발정비사업구역을 심의하며 '지하련 주택'을 이전해서 보존하는 결정을 내린 데 대해서는 원형 훼손 우려가 제기됐다. 이어 마산YMCA는 지난 2일 창원시청 기자회견에서 "최근 이전 보존 결정으로 철거 위기에 놓인 '지하련 주택'을 매입해 원형 보존해달라"고 창원시에 요구했다.

▲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553-2번지에 있는 소설가 지하련이 살던 주택 전경. 1936년 신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2층 목조 가옥이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553-2번지에 있는 소설가 지하련이 살던 주택 전경. 1936년 신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2층 목조 가옥이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지하련 주택'은 지하련(이현욱, 본명 이숙희) 셋째 오빠 이상조 집으로, 지하련이 결핵에 걸려 가족과 떨어져 마산에서 지낼 때 머물렀던 곳이다.

구체적으로 머문 기간은 1940년 5월부터 1941년 11월까지로 알려졌다. 그는 이곳에서 병마는 물론 고독과 싸워야 했다. 지하련은 수필 <일기>(1940)에 "오늘은 종일 기분(氣分)이 나뿌고 열(熱)이 높다", "정말 고독(孤獨)이란 죽음보다도 더한가 보다"고 썼다.

◇지하련 문학 산실이자 배경

이 시기는 지하련에게 괴로운 시간이었겠으나, 그가 작가로 성장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지하련은 이곳에서 사색과 습작을 거듭하며 등단 작품인 <결별>(1940)을 구상하고, <체향초>(1941), <가을>(1941), <산길>(1941) 등을 남겼다.

자연스레 '지하련 주택'은 문학 무대가 됐다. 특히 자전적 소설 <체향초>는 이 집을 잘 묘사하고 있다. 소설 주인공인 삼희가 '어렸을 적 유난히 따르던' 오라버니는 이상조로 추정되는데, 요양차 머물던 지하련에게 볕이 잘 들고 바다가 훤히 보이는 방을 내어준 듯하다. 다음은 <체향초>에서 지하련 주택을 묘사한 부분이다.

"먼저 나무와 꽃이 욱어지고, 양(羊)과 도야지와 닭들이 살고 있는 양지바른 산호리, 그 축사(畜舍)와 같은 적은 집에 살고 있는 얼굴 흰 오라버니를 잊을 수는 없게 되었다."

"가든 날도 도배를 말장히 했고, 뜰에 놓인 나무토막이라든가, 철사나부랭이도 죄다 치이게 하고, 또 삼히를 위해서 광선(光線)의 드나듦이 가장 알맞고, 바다가 잘 보이고 하는 이러한 좋은 조건을 가진 방을 그에게 주었었다."

현대문학 작품에서는 고전문학과 달리 배경이 특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문학작품에 '지하련 주택'이라는 구체적인 장소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문학적 의의가 있다.

박정선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지하련은 이채로운 작가다. 여성 심리 묘사는 물론 인물의 섬세한 내면 묘사에 특히 비범한 자질을 보였다"며 "근대문학사적으로 봤을 때 지하련이 머물며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한 장소라는 것만으로도 이 주택이 가진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 주택 내부 모습.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주택 내부 모습.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주택 내부에 화재로 소실된 부분이 보인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주택 내부에 화재로 소실된 부분이 보인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당시 지역에서 보기 드문 고급주택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이 집은 건축사적으로도 보존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건물이 지어진 건 1936~1937년 사이다. 전문가들은 이 건물을 1920년대 서양문화가 유입하던 당시 서울(경성)에 유행했던 문화주택으로 분류한다. 특히 '여성 공간'으로 분류했던 부엌과 욕실, 화장실이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 특징인데, 이는 생활방식, 나아가 여성 지위가 변화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경상남도 누리집 경남근대건축 항목에 있는 지하련 주택 설명을 보면 △다다미방, 주방, 화장실, 복도 등 평면과 목조 구조와 지붕의 형태 등이 내외부 모두 전형적인 일본식 주택의 모습으로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고 △출입구는 포치를 구성하는 등 각 공간마다 지붕의 위계를 달리해 리듬감 있는 주택을 형성하고 있으며 △다양한 형태의 목재창호를 설치했고 △화강석으로 만든 축대 위에 붉은 벽돌을 쌓은 담장이 웅장하고 특색있다고 적고 있다.

한마디로 일제강점기 당시 지역에서는 거의 보기 어려웠던 현대적인 고급주택이었다.

박진석 경남대 건축학과 교수는 '지하련 주택'이 가진 여러 건축적 가치 중 핵심은 '장소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주택은 지하련이라는 작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했던 삼 형제(이상조·이상북·이상선)가 살던 곳이라는 점에서 건축물의 가치를 뛰어넘는 장소성을 지니고 있다"며 "건축물은 쉽게 지을 수 있지만 장소성은 시간과 역사가 만드는 것이라 지하련 주택이 위치를 옮긴다면 그 의미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련 주택'은 지은 지 80년이 넘었고, 화재로 소실한 부분이 많다. 이를 옮기려면 몇몇 건축자재만 활용할 뿐 사실상 신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전을 하면 장소성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이 집이 가진 가치가 퇴색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원형 보존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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