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측 연구자들 의지 있으나 예산·교류 인식 부족 '장벽'
'북 천연 약재-남 개발 역량' 결합하면 감염병 대응 강국

물 좋고 공기 좋았던 마산은 예나 지금이나 결핵 치료의 중심지입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에 있는 국립마산병원은 우리나라 국가 결핵 관리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국제결핵연구소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핵'이라는 남·북한 공통의 질병이 최근 경색된 남북교류협력의 물꼬가 될 수 있다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국제결핵연구소를 거점으로 남북공동 결핵 치료제를 연구·개발하자는 것입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전문가들은 남북이 협력할 분야로 결핵·말라리아 등 주요 질병 치료를 비롯해 백신·신약 개발 분야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특히, 북한의 야생·천연 식물을 공동으로 연구해 신약을 개발한다면 중요한 의미가 있다."

'결핵-북한의 천연식물-공동 연구', 김 장관 발언에는 창원시 가포동 국제결핵연구소에서 최근 5년간 진행한 일련의 과정이 압축적으로 담겼다. 하지만, 남·북한 연구원들이 만나기까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 북한 대동강 맥주 주원료 홉.<br /><br /> /한반도 생물자원 포털
▲ 북한 대동강 맥주 주원료 홉. /한반도 생물자원 포털

◇다시 5년 전 = 국제결핵연구소 엄석용(58) 박사가 "북한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길 바란다"며 건넨 '환삼덩굴 추출물의 항결핵 효과' 논문이 시초가 됐다. 약 1년 뒤 한 국제 NGO를 통해 북한에서 연락이 왔다. 북한의 환삼덩굴과 홉 추출물을 보낼 테니 국제결핵연구소에서 항결핵 효과가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것이다. 홉은 대동강 맥주 주원료로 북한에서 재배가 체계화되어있는 식물이다. 맥주로 유명한 독일에서는 전통적으로 이 홉이 항결핵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다.

엄 박사는 "북한에서 보낸 추출물에서 나온 물 같은 액체가 무엇인지, 그 답을 듣기까지 두 달이 걸렸다. 직접 소통하는 게 아니라 NGO를 통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북한은 남한과 함께 결핵 치료제를 개발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국제결핵연구소는 북한으로부터 받은 추출물로 항결핵 효과를 실험한 결과에서도 결핵균 살상과 대식구 활성 효과를 확인했다. 논문 발표 이후 진행한 '쥐 실험' 효과 입증 결과도 북한에 보냈다. 몇 년에 걸쳐 드문드문 소통이 이어지자 북한 측에서 "남북 연구자가 만나 결핵 관련 워크숍을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러운 제안을 해왔다. 국제 NGO 주최로 워크숍을 진행해 남·북한 연구자를 초청하는 방법까지 고민이 이어졌다. 하지만, 연구 예산 문제와 남북 교류협력 인식 부족으로 국제결핵연구소 측은 답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북한 측의 결핵 치료제 공동 연구 의지만 확인했을 뿐, 다시 5년 전 "북한사람이 건강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논문을 건넨 날, 그날에 머물러 있다.

▲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국제결핵연구소 인근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환삼덩굴.<br /><br /> /이혜영 기자
▲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국제결핵연구소 인근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환삼덩굴. /이혜영 기자

◇지속가능한 사업 = 남북협력기금은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협력사업 전반에 사용할 수 있지만, 의료·보건 관련은 의료물자·의약품·혈액 주머니 등 명확하게 전달이 확인되는 사업에 주로 사용됐다. 그간 치료제·백신 등 공동 연구사업이 없었기 때문에 남북협력기금 대상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미뤄진 상태다.

엄 박사는 "한반도 자생식물을 활용한 결핵 치료제 개발은 부작용이 적고, 기존 항결핵제와 교차내성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북한의 자체적 치료제 개발 역량 강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 처지에서는 결핵 치료제 개발보다 북한과의 지속 가능한 연결고리를 형성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결핵연구소는 남북 공동 워크숍을 기점으로 최종적으로 5~6년 뒤 남북한이 공동으로 개발한 결핵 치료제의 국제특허 등록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엄 박사는 방법을 찾고자 경남 남북교류협력연구센터에 최근 진행 과정과 장기 계획을 설명했다. 황교욱(43) 남북교류협력연구센터장은 남북교류협력기금을 좀 더 폭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황 센터장은 "북한은 천연식물을 활용한 약재 개발 연구가 발달해 있다. 우리나라의 신약 개발 기반이 더해진다면 상호 호혜적 모델이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한반도에 만성적인 계절성 독감, 돼지열병, 말라리아 등 감염병 공동대응체계를 마련할 초석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황 센터장은 이와 관련, 코로나 시대 이후를 대비한 실효적 남북협력 방안 중 하나로 남북 공동 결핵연구사업 타당성을 관계 기관과 함께 검토할 예정이다.

아직 환삼덩굴과 홉의 항결핵 효능만 검증한 단계다. 이후 유효 성분 검출, 원료 표준화, 결핵 예방·치료 물질 개발 등 단계를 거치면서 의료물자처럼 지원 성과가 수치로 매 순간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남북 공동 결핵 연구, 결핵 치료의 중심지 마산에서 출발한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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