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자랑하는 한국, 노동 분야 후진적
윤리 표방한 기업마저 임금·고용 차별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 씨가 지상에 내려왔다. 자그마치 354일 동안 김 씨는 허공을 집으로 삼았다. 20여 년 전 노조 결성을 이유로 해고된 김 씨는 자신의 목소리가 막혔던 지상을 벗어나 허공에서 아래로 존재를 알렸다.

김 씨가 허공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이르지 못한 노동 조건과 목숨 걸며 싸우는 동안 그가 간절히 밟고 싶었던 지상에서는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한국의 위상이 글로벌 수준에 올랐다는 목소리가 요란히 들렸다. 'K방역'을 국제표준으로 추진하니 어쩌니 하는 말이 나오고, 정부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G-7 정상회담에 초청도 받고 보니, 한국인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방역 전쟁에서 정부가 잘 대처했는지는 따져봐야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방역을 제외하고 한국이 내세울 만한 게 무엇인지 묻는다면 낯이 뜨거워지는 분야가 있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아니 개발도상국까지 넓히더라도 유달리 후진적인 분야는 허공에 매달린 김용희 씨의 몸이 상징하는 노동이다.

노조 가입률이 10%에 불과하고, 산재 사망을 일으킨 기업주라도 처벌을 피해 가며, 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만으로도 해고가 이루어지는 나라. 동등한 처우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하거나 시험 치고 당당히 들어오지 그랬냐"는 악담을 퍼붓고,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는 거짓말을 신봉하는 나라. 아이들이 노동자를 꿈으로 삼으면 '쪽팔리는' 직업이고 시이오(CEO)라고 해야 모범적인 답안이 되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는 노조를 조직한 노동자가 수십 년째 복직하지 못하거나 허공에 올라가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반적인' 기업과 다르거나 윤리를 내건 기업마저 노동에 적대적인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친환경 물품을 공급하는 iCOOP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윤리적 소비'를 기업 가치로 내세운다. 자연 퇴비를 뿌리고 제초제를 치지 않는 농작물, 케이지축사에 가두지 않은 닭이 낳은 계란, 가난한 나라 주민에게 제값을 지불한 물품의 소비를 표방한다. 경남 지역 iCOOP생협 조직들은 물품을 판매하는 매장 ㈜쿱스토어경남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는데, 사측과 노조 간의 단체협상이 진행 중이다. 소속 노동자들은 대부분 여성이며 상당수는 비정규직이다. 감정을 숨기고 밝은 미소로 고객을 응대하는 감정노동이 이들에게도 요구되었다. 단협에서 노조는 관리자와 노동자에게 차등 지급돼온 명절 수당을 똑같이 해달라고 했지만 사측은 비용 부담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임금 인상 문제가 쟁점인 여느 기업의 단협에 비추면 명절 수당의 균등 지급은 매우 소박한 요구라는 생각이 든다. 설날·추석은 쿱스토어경남에도 대목이며, 매장 노동자들은 말을 걸기 미안할 정도로 정신없어진다. 노동을 비용으로만 보는 일반적 기업과는 다른 인식을 협동조합 자회사에 바라는 것이 지나친지 모르겠다.

iCOOP생협이 노동자를 윤리적으로 대하는 것과 거리가 있다는 점은 물품을 생산하는 구례자연드림파크 노동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이미 드러났다. 구례자연드림파크 노동자들은 실질 사용자인 iCOOP생협에 직접 고용, 노조 활동 보장, 노조원 징계·소송 취하 등을 요구하며 수년 동안 김용희 씨처럼 고공에 매달리는 대신 지리산 칼바람을 맞으며 몇 번의 혹독한 겨울을 보냈다. 윤리를 표방한 기업이 윤리와 배치되는 일을 벌이는 것이 가능한 나라는 노동의 국제 표준과 얼마나 많이 떨어져 있는가. 바이러스를 잡는 능력으로 대한민국이 모범국가라도 된 것처럼 들뜨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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