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영 터에서 건물 일부 확인
성 복원 뒷받침할 자료로 기대

진주시가 경남연구원에 의뢰한 진주성 내 중영(中營) 터 학술발굴조사에서 조선시대에 축조한 중영 건물 일부가 확인됐다고 3일 밝혔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조선 후기 진주성도에 표현된 벼랑 지형과 진무청(병영에 소속된 서리의 집무실)으로 파악되는 관아 건물 1동이 확인됨에 따라 앞으로 진주성 중영과 부속 건물 복원을 뒷받침하는 실증적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사는 지난해 12월부터 올 5월까지 진행됐으며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진주성 내 주요 건물인 중영의 복원을 목적으로 중영과 그 부속 건물의 위치와 구조를 밝히고자 했다.

▲ 진주시가 경남연구원에 의뢰하여 진행한 진주성 내 중영(中營) 터 학술발굴조사에서 조선시대 중영 건물의 일부가 확인되었다고 3일 밝혔다. 사진은 진주성 중영 터 발굴조사 현장.  /진주시
▲ 진주시가 경남연구원에 의뢰하여 진행한 진주성 내 중영(中營) 터 학술발굴조사에서 조선시대 중영 건물의 일부가 확인되었다고 3일 밝혔다. 사진은 진주성 중영 터 발굴조사 현장. /진주시

진주성은 1592년에 김시민이 이끄는 조선군과 백성들이 일본군을 물리친 곳으로 한산도대첩·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지로 꼽힌다. 1593년 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민관군 7만 명이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역사의 현장이다.

임진왜란 직후 1603년에 경상우병영이 진주성에 설치됨에 따라 진주성은 경상우도(慶尙右道)의 병무중심지이자 영남 서부의 중점 방어기지로서 높은 위상을 지닌 곳이다. 이에 진주성은 사적 제118호로 지정돼 지속적인 보존과 정비가 이뤄지고 있다.

중영은 경상우병영의 참모장인 우후(虞候·병마절도사를 보좌하는 종3품의 무반 관직)의 근무 공간이며, 우후는 진주성에서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종2품의 최고위 무반 관직) 다음으로 막중한 임무를 지닌 고위직 관리에 해당한다.

조선 후기 여러 진주성도에 따르면 중영은 영남포정사문루와 공북문 사이에 망일헌(望日軒), 장청(將廳), 삼문(三門), 배리청(陪吏廳), 진무청(鎭撫廳) 등의 부속 건물과 함께 조성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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