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농사나 짓겠다는 사람들 는다
시골서 그리 살다간 피죽도 못 끓여 먹지

생각보다 역병이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병도 병이지만 그로 인해 온 세상이 뒤죽박죽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막내 녀석은 담임 선생님 한 번 만나지 못하고 친구들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 새로 맞춘 겨울 교복은 옷걸이에 걸린 그대로 장롱으로 들어가고 여름 교복을 입었다.

세계를 휩쓴 대유행으로 경기는 얼어붙고 공장은 일감이 떨어졌다. 긴급재난지원금을 풀었지만 시장 골목은 옛날 같지 않게 한산하다. 파리채가 도리깨 타작을 하는 밥집엔 일을 공친 낮술 손님 두엇 콩팔칠팔 어깃장이 그나마 술청 꼴을 낸다.

세상에 대고 내지르던 삿대질이 혀 꼬인 푸념으로 늘어진다. 하다하다 안되면 시골 들어가서 농사나 지을 거란다. 농사와 시골살이를 만만하고 우습게 아는 말투가 배알이 뒤틀려 눈 모서리에 잔주름이 모인다. 취객인 줄 알면서도 괭이 메고 밭둑 이슬만 털고 다니면 곡식이 절로 영그는 줄 아냐고 불뚝성을 내질렀다. 그랬더니 이 양반 한술 더 떠서 허파 뒤집는 소릴 한다. 누구 눈치 볼 일도 없고 비 오면 놀고 바람 불면 쉬니 사람과 일에 치이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지금보다야 낫겠단다. 시골 들어가 그리 살다간 피죽도 못 끓여 먹고 이웃들 눈총에 배겨나지 못할 거라 퉁을 주었다.

시절이 어려운 데다 1960년대 골목을 주름잡던 세대가 정년을 맞이하면서 귀농 귀촌 이야기가 부쩍 많이 들린다. 하지만 많은 이가 제대로 깃들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나오거나 큰 짐을 안고 시난고난 살아간다. 누구 눈치 안 보고 비 오면 놀고 바람 불면 쉬는 시골살이를 생각하고 들어온 이들이 모두 그랬다. 시골 마을 공동체는 도시의 그것보다 훨씬 더 끈끈한 유대와 강한 공동의 의무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텃세 때문에 못 견디고 나왔다는 이들은 남의 간섭과 눈치가 싫어 그들과 유대를 맺지 못하고 공동의 의무와 책임을 지지 않고 공익보다 자신의 이해 문제로 이웃과 언성을 높였던 적은 없었는지 먼저 생각해 볼 일이다.

농사는 회사 일처럼 주어진 것만 잘 처리하면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일과는 다르다. 농사꾼은 노동자이면서 경영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라의 식량 주권 지킴이들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어울려 꾸리는 농사는 때를 놓치고 일을 미루면 빌어먹기 십상이다. 바람 분다 하여 제때 씨 뿌리지 않고 모종 묻기를 늦추면 실한 곡식 단 열매 보기는 그른 일이다. 비 온다 하여 물꼬 손보지 않고 밭고랑 풀 단속 미루면 푸샛것 녹아내리고 범이 새끼 칠 판이다. 누가 시키는 대로 하는 일이 아니니 닦달에 시달리지는 않지만 계획에서 생산 판매까지 오롯이 제 하기 나름이라 순간이나마 느슨해지면 그 대가는 혹독하다.

"…목동은 놀지 말고 농우를 보살펴라 뜨물에 골 먹이고 이슬 풀 자로 뜯겨 그루갈이 모심으기 제 힘을 빌리로다 보릿짚 말리우고 솔가지 많이 쌓아 장마나무 준비하여 임시 걱정 없이 하세 잠농을 마칠 때에 사나이 걱정 없이 하세 …(중략)… 관솔불 둘러앉아 내일 일 마련할 제 뒷논은 뉘 심으고 앞밭은 뉘가 갈꼬 도롱이 접사리며 삿갓은 몇 벌인고 모찌기는 자네 하소 논삼기는 내가 함세 들깨모 담배모는 머슴아이 맡아 내고 가지모 고추모는 아기 달이 하려니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아들인 정학유가 지었다는 농가월령가 5월령 부분으로 양력으로는 지금 시절에 해당한다. 공동체의 유대와 계획한 대로 철에 맞추어 미루지 않고 준비하는 모습을 읊었다. 시골살이를 생각하는 요즘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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