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깨달음 넌지시 던져
노년에도 새로 쓴 시로 구성

미수(米壽)를 앞둔 노 시인은 여전히 앞을 바라보고 산다. 저 먼 어딘가로, 무언가의 도래를 기다리는 시인의 숙명 같은 태도다.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는 동안/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하겠습니다/ 늙고 지친 시간들이 나를/ 기다림 밖으로 밀어낸다 할지라도/ 내 생각은 같습니다 (중략) 설사 기다림의 끝자리가/ 죽음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과의/ 마침표라 할지라도/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건너올 때까지/ 나는 당신을 봄눈처럼 눈을 감고 기다리겠습니다" ('기다림의 추억' 중에서).

"나는 지금 어느 길을 헤매고 있는가 내 어찌 이대로/ 너에게 돌아갈 수 있으리 깜박깜박 숨바꼭질하는/ 기억력, 비틀거리는 오리발 바로 세우고/ 네게로 다가가고 싶다 언제나 떨어져 곁에 있는/ 낙엽처럼 할 말 다 내려놓지 못한 처음 고백처럼." ('어떤 고백' 중에서)

이광석(85) 원로시인의 새 시집 <바람의 기억>(도서출판 경남, 2020년 5월)은 놀랍게도 모두 새로 쓴 시로 채워져 있다.

노 시인은 여전히 "내가 누군지 흠모하는 침묵" ('달이 기우는 뜻은' 중에서), "추하게 늙는 산은 없다"('날저문 산행' 중에서) 같은 징- 하고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들을 우려낼 줄 안다. 그리고 지극한 일상 속에 넌지시 담아 내는 삶의 깨달음이 이번 시집의 매력이다.

"작은 산이/ 작은 산 하나 보탠다고/ 큰 산이 되는 건 아닌데/ 작은 생각이 다른 생각 하나 업는다고/ 큰 생각 되는 건 아닌데/ 아무리 작아도 산은 착하고/ 아무리 작은 생각도/ 선한 생각은 깊고 강하다네" ('선한 생각 만들기' 전문).

하루하루 편안하게 보내는 일만으로도 벅찰지 모를 노년의 시간 속에서 시인은 오늘도 묵묵히 쓸쓸해하고, 고뇌하며 밤 그림자를 쫓고 있다.

"나와 타인, 나와 세상을/ 이어주던 의자의 그림자가 희미해지는 겨울밤, 의자 대신 지팡이를 짚고 밤보다 더 어두운/ 깊은 잠의 계단으로 유행성 독감에 업힐 듯/ 떨며 내려간다/ 내일은 편백숲 순백의 새벽 공기가 다듬어낸/ 그 푸른 의자에 앉고 싶다." ('의자가 떠난 자리' 중에서).

"아, 어쩌랴 통술집 담벼락에 쓸쓸히 떨고 있는/ 내 시의 퇴근길" ('시의 퇴근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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