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서 전두환 흔적 지우기 하는데
그 아호 딴 일해공원 명칭 그냥 둘 건가

2007년 1월 18일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한 놀이터. 당시 서울에서 파견근무 중이던 나는 놀이터 그네에 앉아 전세버스가 도착하길 기다렸다. 창원과 합천 등에서 오려면 대여섯 시간이 족히 걸리는 곳. 전두환이 사는 동네다.

오후 늦게 새천년 생명의 숲 지키기 합천군민 운동본부와 일해공원 추진 반대 경남대책위 준비모임 소속 시민들이 도착했다. 서울에서도 부촌으로 꼽히는 동네 골목 어귀에서 경상도말이 쏟아졌다. "전두환 나온나", "29만 원밖에 없다면서 수족(전경)은 와 이리 많노", "고향 사람 이렇게 푸대접할끼가".

이들은 전두환 아호를 딴 합천군 일해공원 명칭을 두고 당사자 의견을 듣고자 했다. 전두환은 고향에서 대접해주니 고마웠을까, 당연하다고 여겼을까?

그러나 이날 고향 사람들은 문전박대당했다. 경찰에 가로막혀 대문 앞까지도 가지 못하고 골목 입구에서 규탄 목소리를 높였다. 합천군의회 윤재호(열린우리당)·박현주(민주노동당) 의원은 항의 뜻으로 삭발했다. 군의원 11명 가운데 일해공원 명칭에 반대한 오직 두 사람.

합천읍 황강변 새천년 생명의 숲은 2000년을 맞아 밀레니엄 기념사업으로 합천군이 경남도 지원을 받아 조성한 공원이다. 느닷없이 공원 이름을 바꾸려고 나선 데는 심의조 전 합천군수 입김이 컸다.

그는 2002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선되고 나서 2006년 재선에 성공했다. 심 전 군수는 반발 여론에 아랑곳없이 2007년 1월 29일 명칭 변경을 확정했다. 주민 설문조사 결과와 군의원 다수(11명 중 9명)가 지지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설문조사는 읍면 유관 기관 단체장·새마을지도자·이장 등 1364명을 대상으로 했고, 회수된 591장(43%) 가운데 '일해'가 302표로 가장 많았다고 했다. 2006년 말까지만 해도 합천군 인구 수는 5만 5000여 명이었다. 과연 주민 여론을 제대로 반영한 걸까?

올해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됐다. 시민 수백 명을 무차별 학살한 장본인인 전두환은 40년째 사죄는커녕 반성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전국 곳곳에서 전두환 흔적 지우기가 이뤄지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8일 전두환 글씨로 된 국립대전현충원 현판을 바꾸기로 했다. 충북도는 청주 옛 대통령별장 청남대에 설치된 전두환 동상을 철거하기로 했고, 제주도는 도청 청사 안에 있던 전두환 기념식수 표지석을 제거했다.

일해공원으로 명칭이 바뀐 지 13년이 지났다. 그동안 계속된 명칭 논란에도 바로잡을 수 없었던 이유는 뭘까? 대구·경북과 가까운 합천군이 보수색이 짙어서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민단체나 언론이 나서서 명칭 문제를 제기해도 결국 합천군민 뜻이 모여야 한다는 얘기다.

문준희 군수와 합천군민에게 묻고 싶다. 민주주의를 유린한 학살자 아호를 딴 공원 이름을 고향이라는 이유로 이대로 내버려둬도 괜찮을까요? 아이들이 공원 유래를 물으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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