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가까운 농촌마을에 있어 작업·치유 동시에
교수직 내려놓고 작품 몰두하면서 "이게 자유구나"

윤쌍웅(53) 작가와 처음 만난 건 지난 2월 금강미술관에서다. 그의 61번째 개인전이자 전업작가로서 첫 전시가 열렸다. 직접 특허 낸 종이를 사용한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역시나 그의 작업실은 평범(?)하지 않았다.

작업실 위치를 물었더니 '진주미술관'으로 오라고 했다. 내비게이션은 목적지까지 5분도 채 안 남았다고 하는데 '이런 곳에 미술관이 있을까' 싶은 농촌마을뿐이다.

불안감이 들 즈음 좁은 시골길을 따라 들어가니 멀리 '진주미술관'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안심하는 것도 잠시. 진주미술관 옆 '누룽지백숙'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미술관 옆 동물원은 들어봤지만 미술관 옆 백숙집이라니. 얼른 작가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작가보다 먼저 반겨주는 이가 있었다. 원숭이다. '미술관 앞 작은 동물원'이라고 적힌 곳에서 원숭이가 낯선 손님을 격하게 환영했다.

누룽지백숙 가게로 향했다. 육수가 보글보글 끓고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입구에서 커피 향이 풍긴다. 안으로 들어서니 지난 전시 때보다 한층 밝은 표정의 윤쌍웅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작업실 건물은 2층으로 돼 있다. 1층의 반은 작업실로, 반은 미술관으로 쓰고 있다. 2층은 작가의 집이다. 건물 뒤편으로는 액자와 특허 종이를 만드는 공간이 있다.

그는 지난해까지 진주교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작업에 전념하고자 일찍 퇴직한 후 모든 짐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작업실을 찬찬히 둘러보는데 윤 작가가 "아직 정리가 다 안 돼 어수선하다"며 멋쩍게 웃는다.

교직에 있어 그런지 '작가의 작업실'이 아닌 '작가의 서재'라고 해도 될 만큼 많은 서적이 쌓여 있다.

▲ 윤쌍웅 작가가 진주시 명석면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서후 기자
▲ 윤쌍웅 작가가 진주시 명석면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서후 기자

진주가 고향이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줄곧 타지 생활을 해오던 윤 작가는 2000년 진주교대로 발령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에도 시내에서 생활을 하다 문득 시골이 그리워졌다.

어릴 적부터 동물과 식물을 좋아했던 그는 자연에 조금 더 가까이 가고자 10여 년 전 농가를 사서 건물을 지었다.

"진주가 문화예술 도시이지만 당시 문화예술 시설이 많이 부족했고 예술가들도 보수적인 편이었다.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에 집을 개조해 미술관을 만들었다. 그런데 운영비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전기료라도 벌어보자는 생각에 온 가족이 나서 누룽지백숙 가게를 차렸다."

이제야 궁금증이 풀린다. 누룽지백숙 가게는 몇 해 전 이전했고 간판만 단 채로 작업실이 됐다. 본업을 하면서 가게에 미술관 기획 일까지 하기에는 힘에 부쳤다. 그는 미술관을 10년 이상 이어오긴 했지만 관람객을 위한 전시는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미술관은 지금도 열려 있다. 현재는 윤 작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주로 작업실에서 생활하는데 집과 붙어있어 불편한 점은 없을까.

"매일 출근한다는 마음으로 1층으로 내려온다. 집에서는 거의 잠만 잔다. 그림을 그리다 답답하면 정원을 가꾸고 동물들과 논다. 작업과 힐링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전업작가로 6개월. 국립대 교수라는 안정된 직장을 스스로 내려놓는 결정은 쉽지 않았을 테다. 그만큼 작업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으리라.

"20년 교직생활을 했는데 퇴직 후 3~4개월 정도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작가로 살아보자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자존심을 버리고 밑바닥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지난 2월 금강미술관 전시 기간 마산을 오가면서 '이게 자유'라는 걸 느꼈다. 지금은 매우 만족스럽다."

▲ 진주시 명석면 진주미술관 안에 윤쌍웅 작가 작업실이 있다.  /이서후 기자
▲ 진주시 명석면 진주미술관 안에 윤쌍웅 작가 작업실이 있다. /이서후 기자

이전까지는 전시를 열 때마다 학교에 알려야 했다. 교수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난 그는 자신만의 작업 스타일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갓 전업작가로 뛰어들었기에 다른 작가들만큼 해서는 안 된다며 작업도 열심이다. 하루 2~3점꼴로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소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종이와 기와에 그린 소나무는 다분히 한국적이면서도 서양화 느낌이 나는 색다른 매력을 지녔다. 종이 작품은 한 점 완성하는 데 5일가량 걸린다. 먼저 배경이 되는 풍경을 그린 후 그림을 흐리게 만드는 작업을 한다. 나이테를 새기고 전면에 소나무를 그리는 과정을 거치면 작품이 완성된다.

"소나무를 정말 그리고 싶었는데 잘 그리지 못했다. 민화와 탱화를 배우면서 '일월오악도'를 그리게 됐다. 지금은 해와 달은 의미만 담고 소나무만 그리고 있다. 풍경을 안갯속에 넣어 은은히 비치도록 하는 것은 관람객들이 재미있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본격적으로 소나무를 그린 것은 2013년 무렵이다.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주로 시골 풍경을 그렸다. 그런데 지난 작품들을 살펴보니 튀는 부분이 있다. 1996~1997년 입체 추상 작품이 있다.

"공고를 나왔다. 고등학교 1학년 첫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남으라고 한 것이 인연이 돼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콤플렉스 같은 게 있다.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마침 성신여대에 좋아하는 교수가 있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 때도 추상 작업에 관심이 있었고, 성신여대라는 학교 특성상 더 많은 추상 작업을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이 될 학생들에게 추상보다는 구상을 가르치는 것이 도움될 거라고 생각해 자신도 줄곧 구상 작업을 해왔다. 자유의 몸이 됐으니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할지 궁금했다.

"지나고 보니 이렇게 된 거지 뭘 하겠다고 생각하고 한 적은 없다. 그저 순간을 열심히 사는 것뿐이다. 다시 추상으로 갈 수도 있고, 구상에서 더 깊이 들어갈 수도 있다. 다만 진주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가 박생광 선생이다. 그분 못지않은 획을 한번 그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작업실은 어떤 공간인지 물었다.

▲ 진주서 활동 중인 윤쌍웅 작가.  /이서후 기자
▲ 진주서 활동 중인 윤쌍웅 작가. /이서후 기자

"학교에 있을 때 작업실이란 나를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연구실이었다. 지금 작업실은 스스로 일찍 퇴직한 후 제2의 삶을 살기 위한 공간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그저 매 순간 열심히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추상이든 구상이든, 다른 무엇이 되었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공간에서 탄생할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작업실 주소

진주시 명석면 광제산로 257번길 46 진주미술관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