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존재 감안한 복지제도 바꿔야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부터 폐지

재난지원금이 가구를 기준으로 가구주에게 지급되었다. 가족은 생계를 같이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구로 묶여있지만 연락이 안 되거나 생계가 따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가구주가 임의로 사용해버릴 위험도 크다. 하지만 가구가 아니라 개인 단위로 지급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별로 크지 않았다.

재난지원금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복지나 임금 등 각종 사회제도는 가족이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부양의무자, 즉 가족이 있으면 수급 자격이 제한된다. 가장 즉 중장년 남성에게는 연공급 고임금이 주어지지만, 일반적으로 가장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중장년 여성이나 노인 및 청년 등에게는 별도의 주 수입원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용돈 벌이'나 하러 일한다고 생각하기에 저임금이나 고용의 불안정에 대해 큰 문제의식이 없다.

물론 이는 일정하게 사실을 반영한다. 국가나 사회가 책임지는 공적 복지가 극히 미약했던 한국에선 가족을 기준으로 한 사적 복지가 이를 대체했다. 소농사회와 가부장제의 전통이 강했기에 더욱더 그러했다.

통계상으로는 노인빈곤율이나 저임금노동자 비율이 외국과 비교해 매우 높은데도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나는 정도가 덜한 것도, 실제로 가족이나 친척 등이 사적으로 생계를 보조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도움이 될 가족이나 친척이 없거나, 자신이 오히려 본인 및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중장년 여성이나 노인 및 청년들도 많다. 이런 이들에게 '정상 가족'의 가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저임금을 감수하거나 각종 복지제도에서 배제하는 것은 이들을 더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이다. 그 결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이다.

가족 기준의 사적 복지 위주 시스템은 문제를 일정하게 완화하는 완충 기제이기도 하지만, 가장 힘든 이들에 대해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잔인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실제로도 한국의 소득통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하위 20%이다. 1 대 99니 20 대 80이니 말을 하지만, 한국의 소득 상위 50%와 소득 상위 10% 간 격차는 심각하긴 해도 최악은 아니다.

반면 소득 상위 50%와 소득 하위 10% 간 격차는 OECD에서 압도적인 꼴찌이다. 최근 통계로도 소득 하위 20%의 소득이 가장 많이 감소했다.

정상 가족이 있는 목소리 큰 중산층 위주로 각종 제도가 이루어지면서,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최하위층들은 아예 논의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이들부터 먼저 챙겨야 하지 않는가. 가장 힘든 누군가의 희생을, 언제까지 있지도 않거나 능력이 안 되는 가족 등이 알아서 하라고 떠넘길 것인가.

복지든 임금이든 각종 사회제도는 가족 내지 별도의 주 수입원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아야 한다. 가장 우선적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부터 폐지하자. 한꺼번에 하기가 어렵다면 생계급여부터라도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자.

그에 따른 소요 예산은 대략 1년에 1조 3000억 원 정도이다. 재난지원금으로 14조 원을 쓰는 나라에서, 매년이긴 하지만 그 예산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을 쓰지 못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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