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무대 대신 비대면 예술 활기
그래도 언제나 '현장에 답이 있는 법'

"레코드 음악을 듣는 것은 브리지트 바르도의 사진을 들고 침대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루마니아 출신의 명지휘자 세르주 첼리비다케는 무대를 멀리하고 레코드에 빠져드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쏘아붙였다. 아무리 여러 형태의 신기술이 나오더라도 음악의 기본은 무대에 있으며 음악의 진가는 일회적인 공연에 있다는 것이 지휘자 첼리비다케의 생각이었다.

나 역시 무대의 힘을 믿으며 현장이 주는 에너지를 사랑한다. 그렇지만 공연장은 나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불편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티켓 구매 문제, 공연 시간을 맞추는 문제, 주차 문제 등도 신경이 쓰이지만 역시 제일 큰 불편은 '민폐 끼치는 사람들'이다. 공연이 시작된 뒤 뒤늦게 비비고 들어오는 사람, 지나친 향수 냄새를 풍기는 사람 정도는 어쩌면 약과일지 모른다. 아이가 앞 좌석을 발로 차는데도 제지하지 않는 부모,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려고 계속 부스럭거리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가장 참기 힘든 휴대폰! 공연 중 사진을 찍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과 계속해서 문자를 주고받는 사람의 정신세계를 나는 죽어도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일들로 마음 다치는 횟수가 잦아지자 공연 관람을 줄이고 오디오와 컴퓨터의 세계에 틀어박혀 버린 사람도 있다. 이른바 재생 음악이라 불리는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이 세계는 참 편하다. 혼잡시간대에 허겁지겁 차를 몰고 공연장에 가는 대신 감상 시간을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다. 맘에 드는 연주를 복제해서 저장할 수도 있다. 앉아서 들어도 되고 누워서 들어도 되며 물구나무서서 듣는다 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민폐족들로 인해 마음 다칠 일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음반과 유튜브의 세계를 배회하며 놀고 있던 중에 코로나19라는 것이 몰아닥쳤다. 그건 마치 놀러 나왔다가 집에 돌아갈 길이 막힌 것과 비슷했다.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공연장, 그 피와 땀과 눈물이 범벅되는 현장이 사라져버렸다. 없어져 봐야 소중함을 안다고 했는데,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공간도 마찬가지라는 걸 이번 사태로 알게 된 것이다.

그 빈자리를 이른바 '비대면 예술'이라는 것들로 조금씩 채우기 시작했다. 무대를 잃어버린 연주자들이 인터넷상으로나마 청중들과 만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베를린필, 빈필, 런던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굴지의 연주단체들도 영상 자료를 무료로 볼 수 있게 했다. 그 영상물을 보면서 나는 다시 확인했다. 세상에는 그 시간과 그 장소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카메라가 제아무리 연주자의 동선을 세밀하게 클로즈업한다 해도 공연장에서 내가 직접 느끼는 무형의 열기를 담아내기는 힘들다. 앞으로 여러 종류의 '비대면 예술'들이 넘쳐나겠지만, 공연장을 무시하거나 잃어버리면 브리지트 바르도의 사진을 들고 침대에 들어가는 꼴이 될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코로나를 현명하게 극복하고 있으며, 잃어버린 것들도 하나씩 복구하고 있다. 비록 마스크를 쓰고 띄엄띄엄 앉은 형태지만 공연장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마치 큰 홍수가 지나간 후에 주섬주섬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이 모여 앉아서 음악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랜 세월 동안 공연계를 지켜온 선배가 가르쳐 준 사자성어가 기억났다. '우문현답' - 우리의 문제는 언제나 현장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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