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존재 슬픔·고통 담아
중단편 소설 9편으로 구성

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가, 도입부에서 막연하던 이야기가 한 장 한 장 넘어가면서 뚜렷해지고 앞뒤 연결고리가 드러날 때 불쑥 솟아나는 감동의 그 맛 아닐까 싶다.

"두 사람은 따가운 봄볕 속에서 하루 종일 같은 일을 반복했다. 여린 녹차 잎의 모가지를 꺾는 일은 매우 단조로우면서도 가슴이 시려오는 일이었다." ('푸른 눈썹' 11쪽)

하아무 작가의 이 소설집 표제작 '푸른 눈썹'에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불혹의 나이를 앞둔 주인공 재은이 칠순을 앞둔 이모와 녹차밭에서 녹차 잎을 따는 모습은 목가적 풍경으로 비친다. 하지만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왜 재은에게 이러한 단조로운 일이 가슴 시린 일인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솥단지의 열기 속에서 그 모든 것이 되살아났다. 미주의 안타까운 손짓과 엄마를 부르는 외침이 고스란히 되풀이되었다." ('푸른 눈썹' 23쪽) 재은의 딸 미주는 어린이집 통학차 안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했고 그 때문에 이혼하고 고향으로 오게 되었다는 사연을 알게 된 뒤로는 차를 덖으면서 드러내 보이는 그의 행동이 자연스레 이해되고 감정이입 현상마저 느끼게 된다. 소설 마지막에 가서야 '푸른 눈썹'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는 것도 이 소설의 매력일 것이다.

이 소설집에는 '푸른 눈썹'을 비롯해 9편의 중단편이 들어 있다. 문학평론가 정호웅 홍익대 교수는 "하아무 소설의 중심인물은 하나같이, 안간힘을 다하지만 가난하고 불안정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여운 존재이다"라면서 "폄하와 냉대의 차가운 눈길이, 이기적 욕망이, 배신이, 그리고 평화로운 일상 속으로 문득 밀고 들어와 가족을 해치는 느닷없는 폭력이 그들을 내몰아 그런 가난과 불안정의 삶에 가둔다"고 분석했다.

하아무 작가는 하동 평사리 '박경리문학관'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문학에 대해 정호웅 교수는 "주변부 존재들의 깊은 슬픔과 고통의 삶을 담고 있어 어두운, 그러나 그 슬픔과 고통을 딛고 일어서서 앞길을 열어 나아가는 굴강(屈强)의 정신이 이끌고 있어 밝은, 평사낙안의 풍경과도 같은 아름다운 한의 문학"이라고 평가했다.

도서출판 북인 펴냄. 249쪽.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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