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노동청 4개월 만에 인가
악천후 경주 거부 등 의논 계획
기존 노조와 교섭창구 조율해야

고 문중원 기수 동료들이 설립신고한 기수노동조합이 정식 노동조합이 됐다. 이들은 한국마사회, 조교사협회를 상대로 단체 교섭을 준비 중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부산고용노동청은 지난 21일 부산경남경마기수노조에 노조설립신고증을 교부했다. 지난 1월 20일 노조 설립을 신고한 지 약 4개월 만이다.

기수노조가 만들어지고 정부에서 정식 필증을 받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체 기수 31명 중 휴직 중인 3명을 제외하고 28명이 모두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오영환 부산경남경마기수노조 위원장은 25일 "늦었지만 다행이다"라며 "기수들이 일하는 체계를 보면 노동자임이 명백한데도 오랫동안 개인사업자라고 규정돼 지금까지 시도도 못 했던 것"이라고 했다. 문중원 기수 사망 이후 설립에 속도가 붙었다는 설명이다.

노동당국이 기수노조에 신고증을 교부한 것은 대법원 판례를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 2018년 학습지 교사들을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판결하며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 판단 기준은 경제적·조직적·종속성을 보여주는 징표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마사회는 조교사를 면허·마방배정권으로, 기수를 면허·징계권으로 관리해 왔다. 조교사들은 기수와 '기승계약'을 맺고 경주출전·훈련 등의 업무를 주도했다. 기수들이 여기 따르지 않을 때는 계약 종료 등 불이익을 받았다. 사실상 마사회-조교사-기수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셈이다.

오 위원장은 "한국마사회와 조교사 협회가 지금까지 기수들의 노동자성을 부인해 왔던 만큼, 지금부터 어떻게 우리의 권리를 찾아올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선 △악천후 시 경주 거부권 △경주 사이 휴식시간 보장 등 당장 급한 일부터 의논해 나갈 계획이다.

정부로부터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정식 노조가 됐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부산경남경마기수노조의 상급단체는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이다.

이성권 공공운수노조 부산지역본부 조직국장은 "6월 중 한국마사회, 조교사협회와 교섭을 시작할 생각이지만 이제 첫발을 뗐을 뿐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마사회가 기수노조를 정식 노조로 인정해도 문제는 남는다. 한국마사회에는 한국노총 소속 노조 3개를 비롯해 기존 노조 5개가 있는데, 이들 노조와 분쟁을 겪을 수 있다. 한 사업장에 복수의 노조가 있을 때 단체협약을 하려면 교섭창구를 단일화해야 하는 까닭이다. 다만, 근로조건, 고용형태, 교섭관행 등을 고려해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면 노동위원회 결정에 따라 교섭창구를 분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에 대해 오 위원장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라며 "같은 마사회 내 노조로서 원만하게 조율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고 문중원 기수 사망과 관련한 마사회와의 합의안에 대해 이성권 조직국장은 "합의안대로 경마공원 운영시스템 전반을 대상으로 연구용역을 냈다고 하니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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