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관광지가 된 세계 곳곳 오래된 건물
창원 지하련 주택, 건축·역사 가치 충분

살다 보면, 버리고 나서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물며 책도 그렇고 오랫동안 사용하던 밥그릇마저 그런 후회를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한데 역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긴 건물이나 길, 광장 등 공간이 사라져버린다면 어떠할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가령 조선시대 세곡을 모으고 관리하던 창원 창동의 마산창과 유정당이 본래의 모습으로 지금도 그 자리에 서 있다면? 또 고려 우왕 때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만들었던 700년 역사의 합포성벽이 1970년대 초 마산수출자유지역(현 마산자유무역지역) 조성 때 바다를 메우는 용도로 쓰이지 않았다면?

캐나다 동부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에는 동화에서나 볼법한 집이 있다. <빨간머리 앤>의 작가 몽고메리의 외갓집이다. 주 정부는 이 집과 마을을 작품 속과 같이 만들고 뮤지컬도 제작해 공연하면서 문화상품으로 만들었다. 연간 수십만 명이 다녀간단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 배경이 된 스위스 마이엔펠트, 작가 요한나 슈피리(Johanna Spyri)가 머물면서 작품을 구상하고 쓰던 마을이다. 역시 작가와 작품을 콘텐츠화해서 유명한 관광상품으로 만들었다. 특정 공간을 문화상품화하는 방법이 이뿐이겠는가. 프랑스의 아를이란 곳은 로마 정치인 카이사르와 인상파 화가 고흐를 한데 묶어 역사와 예술의 문화공간이 되었고 산타클로스 마을이 있는 핀란드 로바니에미는 한 방송국 아나운서가 "그곳에 산타가 산다"고 한 농담이 어쩌다 보니 현실화하여 유명 관광지로 형성되었다.

일본의 나오시마는 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외면받던 외딴 섬이었다. 여기에 땅속 미술관을 만들고 예술인들이 모여들면서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함안 출신 추상미술의 거장 이우환 화백의 미술관도 여기에 있다. 화력발전소가 유명미술관으로 탈바꿈한 문화공간도 있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 건물 한가운데 높이 99m짜리 굴뚝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게 밤이면 등대처럼 불이 깜빡이는데 미술관의 대표 상징물이 되었다.

지난 2011년 철거된 마산합포구 삼광청주 건물이 떠오른다. 그 유서 깊은 건물을 어떻게든 활용할 방법이 그렇게 없었을까.

22일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교육장에서 '지하련 주택 이대로 사라지게 할 것인가'란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집은 1936년 지어졌고 근대건축물로서의 가치가 있는 데다 소설가 지하련의 집필 공간이자 그의 독립운동가 형제들과 남편 임화가 드나들었던 점에서 문학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원형 보존되고 문화상품으로 개발되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이날 또 창원시청 시민홀에선 시민문화공간발굴단이 발대식을 했다. 발굴단의 첫 탐방 대상이 지하련 주택과 문신길이다. 발굴단의 숙제는 지역의 외면받았거나 무관심의 대상이었지만 콘텐츠를 입히면 훌륭한 문화공간이 되는 곳을 찾는 일이다. 쓰임이 다했지만 유용한 유휴공간을 찾아내는 것도 과제다. 창원시의 적극적인 문화정책에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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