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력·소심함 치부해왔던 '안전 강조'
선의에만 맡기지 말고 시민이 감시하자

10여 년 전 창원시 어느 생산 현장. 협력사 소속으로 일하던 어머니는 같은 현장의 아주 단순한 일을 군 제대 후 복학을 기다리던 아들에게 권했다. 3일째 되는 날 엄마와 함께 출근했던 아들은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다양한 산재 사고를 경험했지만 가장 가슴 아픈 기억이다. 그 어머니의 심경을 그 누구라서 헤아릴 수 있을까?

지난 4월 29일 경기도 이천시 냉동창고 건설 현장 화재로 38명이 사망했다. 공교롭게도 12년 전 가까운 곳에서 8명이 사망한 비슷한 화재도 있었다. 이런 일의 전개, 처리 과정에는 늘 비슷한 레퍼토리가 나열된다. 안전불감증, 위험의 외주화, 대대적 수사, 엄격한 처벌, 근원적 재발 방지책, 애틋한 사연과 유가족의 분노, 정치권과 노동계의 등장, 보상 협상, 그리고 곧 사라지는 대중의 관심!

산업재해는 분명 줄고 있지만 비슷한 경제 규모의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는다. 근로자 1만 명당 사망자 수를 살펴보면 2016년 기준 영국이 가장 낮은 0.04명이고 일본은 0.16명이지만 우리나라는 0.53명으로 영국의 13배, 일본의 3.3배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3위이고 그것을 인구로 나눈 1인당 국민 총소득(GNI)은 세계 32위이다.

GDP의 대외 의존도는 88.6%, 수출 의존도는 45.9%. 이 수치들을 모두 버무려 현재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근로자의 목숨을 팔아 일구어낸 성과'라 하면 지나칠까?

우리나라 사정에 밝지 않은 외국인에게 한국 성인 남자의 80% 이상이 군에서 2년 이상 복무하고 병장으로 마친다고 하면 약간의 경외감마저 나타낸다. 그런데 군이라는 곳이 강한 전투력만 길러 주는 것은 아니어서 온갖 비리, 편법, 억지, 아부 등 비뚤어진 사회화 과정도 수행한다. 취약한 안전 문화에도 상당히 공헌했으니 전투 상황에서 군인에게나 통할 법한 '안 되면 되게 하라'를 용기나 도전의 상징으로 세뇌받은 기성세대에게 '안전'이란 오랫동안 무능력, 소심함의 다른 표현이거나 불성실한 변명 정도로 치부되었다.

이런 인식을 완전히 뿌리 뽑지 못하는 한 산업 현장에서 '안전'은 말이나 글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래서 '안 되면 되게 하라'를 열 번 이상 입으로 외쳤거나 백 번 이상 눈으로 읽은 세대가 모두 사라지는 날이 산업 현장에 안전의식이 제대로 싹틔우는 날일는지도 모른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도 않는다. 문화를 바꾸는 일은 지속적인 관심에서 시작된다.

2016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창원의 경우 사망자 발생 산재 건수는 61건으로 기초지자체 중 경기도 화성시 67건에 이어 2위다. 무척 부끄러운 일이다.

산재 문제를 사용자의 선의에만 맡기는 것은 백년하청이니 이제부터 시민들이 모두 나서 감시하는 문화를 만들어 보자. 경남이 가장 산재율이 낮은 지역이 되는 날까지 시민들에게 산재 발생 현황을 매일 보여주는 것부터 해 보자. 코로나 현황처럼. 신문 지면과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전광판은 훌륭한 도구다. 연말에 이웃 돕기 성금 현황을 나타내는 '사랑의 온도탑'처럼 '산업재해안전탑'을 창원시청 광장에 연중 운영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연속 무재해 기록 등 좋은 성과가 있으면 함께 축하하고 격려하는 행사도 하고.

경남도민일보의 전향적, 주도적 역할을 기대한다. 단 하루라도 빨리 경남을 한국에서 가장 안전한 산업지역로 만들기 위해 시민의 지속적인 관심도 아주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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