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 해군 부사관 이형준 씨
홋줄 사고로 다리 크게 다쳐
해군 '모든 지원'약속했지만
제대로 된 치료조차 못 받고
업무 복귀 후 심정지로 숨져

최근 진해에서 해군의 한 부사관이 숨졌습니다. 부검 결과는 급성 심정지입니다. 그는 지난 2018년 11월 해군함정 홋줄 사고로 크게 다쳤었습니다. 해군은 가능한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사관은 자세한 지원 안내와 설명은 못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유족은 그동안 이 부사관을 방치한 해군의 책임이라며 진상규명과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는 당시 사고와 이후 벌어진 일을 상·하로 나누어 싣습니다.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직업군인이 돼 아파트를 얻어 가족과 함께 사는 게 꿈이었던 스물두 살 이형준 하사가 지난 4월 17일 오전 집에서 숨졌다. 유족은 해군의 책임을 요구하며 장례를 거부하다 시신이 부패하는 것을 두고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결국 장례를 치렀다.

해군 특수전전단 소속 청해진함 홋줄(배를 부두 말뚝에 묶는 데 쓰는 굵은 줄) 요원이었던 이 하사는 사고로 크게 다쳤었다. 유족은 당시 해군이 사고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이 하사에게 치료 지원을 게을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지난달 장례가 치러진 고 이형준 하사 빈소 모습.  /유족
▲ 지난달 장례가 치러진 고 이형준 하사 빈소 모습. /유족

◇겨우 목숨 건졌지만 = 고 이형준 하사는 지난 2018년 11월 13일 오전 9시 35분께 경북 포항항에서 청해진함(3200t급) 홋줄 사고로 두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이 하사는 청해진함 6홋줄 요원이었다. 당시 입항 준비를 하다 홋줄이 스크루에 감겼다. 홋줄은 이 하사의 다리를 감았고, 빨려 들어갈 뻔했다. 기절했다가 깨어난 이 하사는 "다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고, 안전화는 다 찢어져 있었으며 발목 쪽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이 하사는 오른쪽 종아리뼈 분쇄 골절, 왼쪽 발목뼈 골절, 오른쪽 척골 측부인대 파열 등 온몸을 다쳤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하사가 남긴 글과 유족 말에 따르면, 당시 해군 참모총장이 병문안해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약속했다.

이 하사의 꿈은 다시 아버지와 함께 한집에서 사는 것이었다. 고등학생일 때 부모는 이혼했고, 아버지는 뱃일을 하느라 떨어져 살게 됐다. 이 하사는 누나, 외할머니와 진해에서 살았었다. 어린 나이에 의지할 데가 없었던 이 하사는 20살이 되자 그해 1월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했다. 장기복무로 전환돼 직업군인이 되면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마련하고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사고 당시 단기복무 부사관이었던 이 하사에게는 장기복무 전환이 절실했다.

이 하사는 서둘러 치료를 끝내고 부대로 복귀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해졌다. 이 하사가 지난해 7월께 작성한 글을 보면 해군은 병원비 지급 절차 안내, 재활치료 지원 등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또 이 하사는 6차례 수술을 받고 공상 처리를 위해 해군에 사고 관련 자료를 요청했으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이 하사를 처음 치료한 병원은 피부가 찢긴 다리 부분에 오염이 우려돼 1인실 사용을 권했지만, 해군은 규정상 지원할 수 없다며 외면하기도 했다.

치료가 급했던 이 하사는 부산 한 민간병원에서 상태가 너무 심각해 특수치료와 운동치료를 병행해야 한다는 소견을 받았다. 민간 병원 비용 문제를 포항해군병원에 문의했더니, 먼저 사비로 병원비를 지급한다는 답을 들었다. 또 공무상 요양비는 나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나 회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난해 1월께 부산의 병원에서 특수재활치료 등을 받았고, 병원비는 약 400만 원이 나왔다. 이 하사는 너무 부담이 커서 다시 포항해군병원으로 갔다가, 이어 해군해양의료원으로 옮겼다. 해양의료원에서 치료는 받았지만, 특수재활치료는 못 받은 것으로 보인다.

▲ 홋줄은 배가 정박할 때 부두와 연결하는 줄을 말한다. 사진은 홋줄을 걷고 있는 해군 장병 모습.  /연합뉴스
▲ 홋줄은 배가 정박할 때 부두와 연결하는 줄을 말한다. 사진은 홋줄을 걷고 있는 해군 장병 모습.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청해진함 구조부장이 이 하사에게 복귀를 종용했다는 목격담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형준 하사는 지난해 8월 아픈 다리를 끌고 부대에 복귀했다.

◇유족 "사고 숨기려 했나" = 이 하사는 수술한 발목에서 철 핀이 빠지기도 하는 등 업무 복귀 후에도 고통에 시달렸다. 지난 4월 23일에는 또 한 차례 수술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이 하사는 수술을 약 일주일 앞두고 숨졌다. 출근 준비를 할 시간에 이 하사가 기척이 없자, 함께 살던 외할머니가 방문을 열었더니 이 하사는 쓰러져 있었다.

유족 측에서는 해군의 책임이라고 보고 있다. 유족은 이 하사가 숨진 후 해군 측에 2년 전 사고에 대해 어떤 수사가 진행됐는지, 누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등을 물었지만 자세한 답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이 하사가 쓴 글에는 "사건을 조사하러 온다고 했는데 오지도 않고, 함장·구조부장·갑판장 등이 경징계만 받고 사건이 종결됐다"고 쓰여 있다.

이 하사의 사촌형(46·김해)은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그는 지난 4월 12일 이 하사를 만나 줬던 용돈이 노잣돈이 되어버렸다며 말끝을 흐렸다.

사촌형은 "함장이 주의를 받았다고만 말했다. 사람이 저렇게 크게 다쳤는데, 단순히 주의로 끝날 일인가"라며 "심각한 부상으로 사실상 장기복무 전환이 안 된다는 게 상식적인데, 이를 빌미로 복귀를 종용하고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게 하려 했다는 의심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형준이는 조카뻘 되는 동생이었다. 만나면 늘 싱긋이 웃던 형준이 얼굴이 생각난다.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보려 하는 게 기특했는데 너무 허탈하다"고도 말했다.

유족은 이 하사가 순직을 인정받아 합당한 예우를 받고, 사고 책임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길 바라고 있다.

해군 작전사령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시 해군 작전사령부가 조사를 했고, 현장 통제가 미흡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에 따라 관련자 주의·경고 등 행정처분이 내려졌다. 사고를 은폐하려거나 축소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또 "복귀를 종용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다. 구조부장 등에게 확인한 결과 그런 사실은 없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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