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이자 성모님의 달 5월
세상살이 지친 이들 보듬어주소서

늦은 밤 천둥소리에 깨어 일어납니다. 창문에 빗소리가 ‘후드득’ 들리고 푸른 빛이 한줄기 번쩍 지나갑니다. 잠시 후 ‘꽈르릉’ 천둥이 다시 웁니다. 다시 잠을 청할까 누워 보지만 쉬이 잠들지 못합니다. 푸른 번개가 스쳐 지나갑니다. 잠시 후에 천둥이 치겠지요.

심란한 마음에 사제관 밖으로 나와 봅니다. 비가 세차게 내립니다. 우산을 펴고 비를 가리면서 성당을 한 바퀴 휭하니 돌아봅니다. 그림처럼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성당이 빗속에 어슴푸레하게 드러납니다. 나무 한 그루 한그루와 아기 예수님을 안고 계신 요셉 성인 동상까지…. 세월의 흔적이 스며든 빨간 벽돌 성당이 비에 씻겨 말끔하니 보기 좋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 그 자리에 모든 것이 그대로 있습니다.

신발에 물이 스며들어 옵니다. 얼른 사제관으로 들어가려다 다시 푸르게 하늘을 가르는 빛에 드러나는 예수님 모습을 힐끔 쳐다봅니다. 한 손을 펴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축복하고 계시는 예수님. 웃으시는 듯, 슬픈 듯 묘한 얼굴 위로 빗물이 흘러내려 눈물 같기도 합니다.

천천히 사제관 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끄려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성모상을 바라봅니다. 짙푸르게 감싸고 있는 나무들 사이로 하얗게 모습을 드러내시는 성모님. 꺼지지 않은 가로등 빛이 비에 부딪혀 아른거립니다. 어머니도 지금 이 밤에 깨어 계시겠지요. 번개와 천둥에 놀라 후드득 날아오르는 새들과 울어대는 어린것들을 감싸주시려고 깨어 다니시겠지요. 코로나19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숱한 생명을 보듬어 주시기 위해 이 밤에도 어머니는 잠들지 못하시겠지요.

어머니, 세상을 돌아봅니다. 제 삶을 돌아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 혼자 더 잘살기 위해 바둥거리는 모습에 가슴이 쓰라립니다. 어머니, 썩은 권력을 위해 쿠데타로 자국민을 학살하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파렴치한 인간의 얼굴에 겹치는 광주의 어머니. 어른들의 무능함과 이기심으로 죽어간 세월호 아이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돌아와야 할 아이들이 거리에서 서성대는 이 밤에 성모님과 함께 세상 모든 어머니가 비를 맞고 계십니다.

더욱 심란해진 마음에 바라본 어머니의 하얀 얼굴 위로 빗물이 소리 없이 타고 흐릅니다. 혹시 그 빗물이 우리를 위해 흘리시는 어머니의 눈물은 아닙니까?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이 오고,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 밝아진다는 믿음으로 주님과 어머니께 우리 삶을 맡기며 사제관 불을 끕니다.

가톨릭에서는 계절의 여왕 오월을 ‘성모님 달’로 기립니다. 어려운 세상살이에 지친 자녀들을 어머니 마음으로 보듬어 주시기를 바라면서 가장 아름다운 계절을 어머니께 드립니다. 가톨릭이 특별한 공경의 대상으로 성모님을 모시지만, 실상 모든 어머니는 우리에게 특별한 공경을 받으셔야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 오월이 가기 전에 우리 모든 어머니를 모시고 푸른 바람을 맞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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