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에 더 치명적인 고통 줘
생존 보장 안전판 마련 논의해야

할머니는 구부려서 무언가를 비닐봉지에 담고 있었다. 젓가락을 들고 가게 앞에 내놓은 점심 그릇에 남은 반찬을 찾고 있었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은 상점을 돌며 할머니는 일용할 땟거리를 찾는 듯했다.

몇 년 전 회사 인근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목격한 모습이다. 기자로 살아오면서 본 가장 아픈 모습 중 하나다. 자괴감이 들었다. 박스때기를 놓고 엎드려 있는 사람을 만나면 무심코 천 원짜리 한 장 넣어주던 때와는 달랐다. 부끄럽고 아팠다. 나는 뭘 하고 있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면서. 나태해지는 나를 볼 때면 그 장면이 떠오른다.

코로나19는 앞으로 어떤 세상이어야 하는지 묻는다. 재난은 없는 사람에게 더 고통을 준다. 하루 벌이, 노약자들, 취약계층에게 치명적이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에는 실업과 돌봄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더 중요해질 거라고 한다. 생존을 위한 환경을 어떻게 만드느냐다. 정부가 밝힌 전국민 고용보험제도는 그중 하나다.

기본소득 논의도 이어질 것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마다 지급하는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 논의를 촉발했다. 총선 과정과 이후 재원 확보, 선별이냐 보편이냐 논쟁이 있었다. 기본소득은 자산·소득·노동활동 관계없이 무조건,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조건 없이 주는 것이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1982년부터 전 주민에게 석유 수입으로 영구기금배당을 지급하고 있다. 딱 기본소득 취지에 들어맞지 않지만 여러 시도도 있었다. 2017년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주민 4000명에게 3년간 매달 1320캐나다달러(약 122만 원)를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을 했다. 핀란드는 25~28세 실업자 2000명에게 1년간(2017년 11월~2018년 10월) 매달 560유로(약 70만 원)를 1년간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을 했다.

국내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청년수당, 농민수당, 아동수당도 기본소득에 포함할 수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성남시장 시절인 2016년 24세 청년 모두에게 1년에 100만 원을 지급하는 청년기본소득을 도입했고, 도지사가 되면서 경기도 전체로 확대했다. 경기도는 이번 코로나 관련 1인당 10만 원을 지급하며 재난기본소득 명칭을 쓰고 있다.

누구에게나 생존 보장을 위한 기본소득을 주면 좋겠지만 관건은 사회적 합의다. 스위스는 2016년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추진했는데 국민투표에서 76.7%가 반대해 부결됐다. 반대 이유는 세금 부담이었다.

기본소득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재난에 대비한 안전판을 마련하는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을 조성해서 가장 피해를 보는 비정규직·특수고용직·영세사업장·이주노동자와 연대하자고 제안했듯이.

같은 비를 맞아도 누구에게는 폭우일 수 있다. 재난은 모든 이에게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