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자에게는 소통·구원·생명의 시작
도망 말고 자신 돌아보면 극복할 수도

우리들은 삶 속에서 하나같이 위기를 겪고 삽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지혜롭고, 또 어떤 사람들은 미련스러운데 그 차이가 과연 무엇입니까? 내공이 얕고 미련한 사람들은 당황한 나머지 그 순간만 모면하려고 하지만, 성숙하고 내공이 깊은 사람들은 그 위기 속에서도 먼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 위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제 판단으로는 이 차이가 닫힘과 열림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면서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코로나 사태를 재앙으로 보고 하루속히 이 환란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열심히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부류는 코로나 사태가 재앙이 아니라 경고라 생각하며 코로나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다 한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 같아도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열려 있는가?' '닫혀 있는가?' 차이입니다.

우리들이 경험하는 위기가 재앙이라도 재앙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닫힌 자에게는 재앙일지 몰라도 열린 자에게는 재앙이 아니라 우리들을 살리기 위한 경고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위기가 열린 자에게는 소통과 구원과 생명의 시작이 될 수 있어도 닫힌 자에게는 불통과 심판과 죽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위기에서 살아남고 오래 사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라고 말할지 몰라도 우리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답게 제대로 사는 것인데 이것은 닫힌 자가 아니라 열린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우리 모두가 처음 경험하는 코로나를 통해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웠는지 몰라도 제가 소름 끼칠 정도로 놀란 것은 이것이 우리들의 참모습인지는 몰라도 평상시와는 달리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그동안 삶 속에서 축적된 지식과 경륜은 물론이고 신앙마저도 자신을 지키는 수단으로 강제하려는 무례함인데, 이것은 불통과 요지부동의 근원이고 수치스러운 것이지 믿음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닫힘은 그 자체가 죽음일 뿐 누구도 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살고 너도 살리려면 내가 죽어야 하는데 내가 죽는다는 것은 곧 나를 여는 것입니다.

열려 있어야 소통이 됩니다. 그리고 소통되어야 나를 넘어서서 더 깊은 것까지도 볼 수 있을 텐데, 나를 넘어서고, 나를 깨트리고, 나를 이기는 길은 예수님이 대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믿고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철저하게 외롭고 고독한 자만이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코로나보다 더 큰 위기가 닥쳐올 텐데 자신을 닫아 두고 피하려고 하는 자는 언제나 도망자일 수밖에 없지만 위기를 끌어안으려고 하는 자에게는 어떤 위기도 그를 삼키지 못할 것이고, 여는 자만이 새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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