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번트 증후군 앓는 동생 진태 베토벤 격정적 사랑 표현한 월광 3악장 연주로 실력 보여줘
난관 이겨내고 성사된 협연서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 장대한 피날레로 감동 극대화

어머니(윤여정)에게 버려져 홀로 남겨진 조하(이병헌)는 한때 WBC웰터급 챔피언이었으나 현재는 만화방을 전전하며 전단 배포와 스파링 파트너로 근근이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그 어머니는 갈 곳 없는 그를 집으로 데려온다.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동생 진태(박정민)와 함께 사는 그녀의 표정이 슬프다. 곧 죽음을 맞이할 그녀는 장애를 앓고 있는 진태가 걱정스러웠으며 하나밖에 없는 형이 그녀를 대신했으면 하는 마음인 것이다. 이런 와중 갈등이 생기고 또 치유되고를 반복하다 결국은 가족이 완성되어 가며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음악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따뜻하게 보여준다.

 

동생에게 일을 맡기고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동생. 애타게 찾아 헤매던 중 길에 놓인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동생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듣게 된 동생의 피아노 연주. 그가 만들어 내는 음악은 길을 지나던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았고 형은 동생의 재능을 처음으로 목격한 것이다. 영화 <레인맨>이 생각나고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설정이 머릿속을 스쳐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떠오른 것은 영화 <샤인>(감독 스콧 힉스, 1996)의 한 장면으로 아마도 두 영화 모두 주인공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시점적 설정과 인상적인 선곡 때문일 것이다.

▲ 진태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스틸컷
▲ 진태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스틸컷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월광' 3악장

<샤인>의 주인공이 러시아 작곡가 림스키코르사코프(Rimsky-Korsakov, 1844~1908)의 '왕벌의 비행(Flight of the Bumblebee)'을 주위의 야유를 뚫고 연주하며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었다면, 진태는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14번 '월광'의 3악장을 통해서인데, 서커스처럼 전개되는 주인공들의 현란한 핑거링으로 그들의 능력치를 효과적으로 관객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두말이 필요 없는 독일의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피아노 소나타 '월광(Sonate fur Klavier No. 14 'Mondschein' Op. 27-2)'은 그 1악장의 서정성으로 인하여 무척이나 친숙하며 프랑스의 작곡가 '드뷔시'의 '달빛 (Clair de lune)'과 더불어 달의 서정을 가장 절묘하게 표현한 악장으로도 유명하다.

이 1악장은 영화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에서도 인상적으로 사용되는데 귀가 들리지 않는 베토벤이 피아노의 음색을 확인하기 위하여 귀를 피아노에 밀착시키곤 조용히 건반을 누르는 순간 흘러나오던 곡이 바로 이 곡으로 서글픈 명 장면이다.

하지만 이러한 1악장의 은은하면서도 명상적인 선율과 달리 영화에 사용된 3악장은 무서운 속도의 질주를 보여주며 월광이라는 부제를 의심케 하는데 역시나 베토벤 자신에 의하여 붙여진 것이 아니라 음악 평론가 루트비히 렐스타프(Ludwig Rellstab, 1799~1860)가 제1악장을 두고 '루체른 호수에 어린 달빛이 조각배의 일렁임 같다'라는 논평을 함으로써 그러한 부제를 얻게 되었으니 단지 1악장만을 묘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월광'엔 '느리게, 음의 길이를 충분히 끌어서(Adagio sostenuto)'와 '매우 빠르고 격렬하게(Presto agitato)'라는 상반된 분위기의 악장이 공존하고 있으며 이는 베토벤이 작곡 당시 사랑했던 여인 '줄리에타 귀차르디'(베토벤은 그녀에게 이 곡을 바친다)에 대한 연정은 낭만적으로, 예견된 비극적 결말에 대한 좌절은 격정적으로 풀어낸 듯하다.

▲ 진태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스틸컷
▲ 진태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스틸컷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주인공 진태와 오케스트라의 협연이 이루어진다.

너무나도 익숙한 선율, 바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차이콥스키(Piotr, Ilyitch Tchaikovsky, 1840~1893)의 피아노협주곡 제1번(Piano Concerto No.1 In B Flat Minor Op.23 )이다.

그 호른의 인상적인 도입부는 너무도 유명하여 누구나 한번쯤은 접해 봤을 것이며 또한 피아니스트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거쳐가야 할 곡이다.

하지만 그 처음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작곡 당시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였던 차이콥스키는 당시 러시아 피아노계의 대부이자 음악원장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Nikolai Rubinshtein, 1835~1881)에게 이 곡을 헌정하려 하였으나 돌아온 것은 초연조차 가지지 못할 정도의 혹평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존경하던 선배의 조언이라도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곡은 당시 독일의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였던 한스 폰 뷜로(Hans von Bulow 1830~1894)에 의해 1875년 미국 보스턴에서 초연되며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는 러시아 음악계의 관례상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이후 인기는 날로 상승하여 현재에 이르러 대중에게 가장 사랑 받는 피아노협주곡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는 곡의 인상적인 부분만을 편집, 보여줌으로써 긴 시간을 견디기 힘든 청중에게 좀 더 쉽게 이 곡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언급했던 호른의 서주 이후 서정적 멜로디를 거쳐 그 장대한 피날레에 이르다 보면 장대한 자연을 대면한 듯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깊은 감동이 전해진다.

▲ 왼쪽부터 진태, 어머니, 조하. /스틸컷
▲ 왼쪽부터 진태, 어머니, 조하. /스틸컷

◇헝가리 무곡과 젓가락 행진곡

영화에 사용된 또 다른 곡들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먼저 자동차 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고 은둔한 비련의 피아니스트 한가을(한지민)의 사고 장면에서 마치 꿈인 듯 들려오던 러시아의 작곡가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1873~1943)의 피아노협주곡 2번(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 18) 중 2악장, 진태를 데리고 그런 그녀를 방문했을 때 둘이 함께 연주(연탄)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던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이 있다. 이 장면은 두 배우가 오랜 연습 끝에 만들어 낸 실연이라 하니 놀라우며 박수를 보내는 바다. 그리고 콩쿠르에 참가한 진태가 연주하던 '쇼팽'의 '즉흥환상곡(Impromptu No.4 in C-sharp Minor, Op.66 'Fantaisie-Impromptu')' 역시 친숙한 곡으로서 반갑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깊은 인상을 남긴 장면은 진태를 통해 피아노 연주에 대한 열정을 다시 찾은 한가을이 '젓가락 행진곡'을 멋지게 연주하던 순간이다. 피아노 앞을 다시 찾은 이가 연주할 곡으로서의 선곡이 반가웠으며 음악감독 '황상준'의 다양한 음악적 형식으로의 편곡이 절묘하여 잊지 못할 명장면으로 기억될 듯하다.

어머니의 장례식 도중 다시 사라져 버린 동생, 그다지 바쁘지 않은 발걸음으로 찾아 나선 형은 거리의 피아노 앞에 앉은 동생을 어렵지 않게 찾아낸다. 그리고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연주를 시작하는 동생, 어머니와 함께 즐겨 듣던 그 노래….

'그것만이 내 세상'.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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