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의식 암시

1909년 안중근 의사는 대한독립을 위해 일본제국주의 총책임자인 이토 히로부미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총살하여 대한이 자주독립 국가임을 세계만방에 알렸고, 뤼순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우리는 아직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한 상태다.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 : 국가의 안위를 노심초사한다'라고 쓰인 이 작품은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일본제국 야스오카 검찰관에게 증정한 작품이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2월 15일 사형선고를 받고, 목숨을 구걸하는 항고를 포기하고 3월 26일 사형집행 때까지 200여 점의 서예작품과 <동양평화론>, <안은칠역사> 등 저술에 매진했다. 안중근 의사 유묵은 글씨 쓰기를 통해 자신 정신세계를 하나로 일치시키고 일치된 그 정신으로 죽음을 초극하고자 하는 지고한 경계에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죽음과 삶이 매한가지라는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경계는 수도인의 최종적 도달점이다. 그러나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것은 현실적 생물적 입장에서 동의하기 어렵다. 이 경계를 이루는 지점은 죽음을 통해 삶이 이루어진다는 미학적 경계의 설정이 필요하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총살 결과는 자기의 죽음이 도래한다는 사실을 알고 태연히 그 길로 나선 것으로, 이미 그러한 자기 한목숨의 결과가 영원성을 이룬다는 것을 인식한 의거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뤼순 감옥에서 글씨 쓰기와 저술 행위는 그러한 삶과 죽음의 일치를 현실에서 행위로 보인 미학적 경지이다. 더더욱 원수인 일본인 검찰관에게 안중근 의사가 절하며 이 작품을 써서 기증하였다는 점이 극적인데 여기에서 안중근 의사의 정신적 도달점은 생사를 초탈하고, 은원을 넘어선 삼라만상이 일체라는 경계를 보이고 있다.

동양평화를 위해 일으킨 이토 히로부미 저격은 이토 히로부미라는 자연인에 대한 처단이 아니며, 또 일본이라는 자연국가에 대한 처단이 아니라, 동양의 평화를 파괴한 일본제국주의라는 사상적 체계와 탐욕을 처단한 것으로 안중근 의사의 진의와 도량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르는 비인도적 정책과 행위는 용서할 수 없으나, 자연인으로서 개인이 지닌 인격은 존중하는 매우 높은 인격과 사랑의 감정을 안중근 의사는 품은 것이다.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안중근 의사의 의(義)에 대한 인식의 경계를 또한 짐작할 수가 있다. 나라를 걱정한다는 것은 세계 각국의 공통된 국민의 마음일 것이다. 그 걱정의 방법과 행동이 결과로 나타날 때 그것이 의(義)인지 불의(不義)인지 자명해진다. 모든 의(義)의 실천은 삼라만상이 정(正) 즉 바르게 되는 곳에 도달해야 할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이 작품은 그것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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