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화재로 공감 확산…20대 국회 종료 임박·폐기 위기
창원시의회, 고 노회찬 의원 발의 법안 조속 처리 건의문

산업현장에서 미흡한 안전 조치로 노동자가 목숨을 잃게 될 때마다 재해를 일으킨 기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됐다. 그런 목소리가 일부 반영돼 올해 1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됐지만, 한계는 여전하다. 이 때문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중대재해 처벌 강화 요구 = 최근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대형 참사로 노동자 38명이 죽고 10명이 다쳤다. 그러자 산업재해에 대한 경각심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요구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김선동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2013년 12월 발의했으나 폐기된 바 있다. 또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당시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2016년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사망사고 이후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도 기업처벌법 도입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2016년 11월 김종훈 민중당 의원이 '산업안전보건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 2017년 4월 고 노회찬(창원 성산) 정의당 의원이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 등을 발의했으나 20대 국회와 함께 폐기될 상황에 놓여 있다.

노 전 의원은 사업주·경영책임자의 안전조치 책임을 강화하고,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 조직·제도적으로 안전관리를 철저하게 유도하겠다는 취지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사업주와 법인, 기관의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상 위험 방지 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가 숨지게 되면 3년 이상 유기징역이나 5억 원 이하 벌금으로 책임을 묻게 하자고 했다.

특히 법인 내부에 노동자 생명·신체·안전·보건상 위험 방지의무를 소홀히 하는 조직문화가 조장·용인·방치돼 있으면 영업정지와 보호관찰, 공계약 배제 등으로 제재할 수 있도록 규정을 해놨다.

◇솜방망이 처벌 고쳐야 = 산재 책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은 거제 삼성중공업 참사가 한 예다.

2017년 5월 1일 노동절에 지브형 크레인 충돌 사고로 하청 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으며 사고를 목격한 수백 명 노동자가 트라우마를 호소한 '삼성중공업 크레인 참사' 최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조선소장이 금고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300만 원으로 확정됐다.

삼성중공업 법인은 벌금 300만 원, 관리감독자였던 부장은 금고10월(집유 2년), 과장은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하청업체 대표는 금고 6월(집유 1년)형이다.

특히 삼성중공업 법인이 6명 노동자 사망에 대한 책임으로 벌금이 '300만 원'에 그치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는 영국의 한 사례와 크게 차이가 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영국은 2007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안전조치 미흡으로 노동자가 죽는 사고가 나면 통상 연간 매출액의 2.5∼10% 범위로 벌금을 내게 하고 있다. 심각한 위반에 대해서는 상한선이 없는 징벌적 벌금을 부과하기도 한다.

2008년 한 지질학자가 3.8m 구덩이에서 지반 침하로 질식사한 사고에 대한 벌금이 한 예다. 영국 법원은 말뚝·지지대 등 사용 지침을 어겼다는 점, 외부 감시자가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38만 5000파운드(한화 약 5억 8000만 원) 벌금을 매겼다. 이는 해당 기업 연매출액의 2.5배 수준이었다.

◇창원시의회 건의문 채택 = 창원시의회는 지난 8일 임시회 본회의에서 '이천 화재참사 재발방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건의문'을 채택했다.

문순규(더불어민주당, 양덕1·2·합성2·구암1·2·봉암동) 의원이 대표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건의안'에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고 노회찬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시의회는 건의문에서 "지난 4월 28일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에서 38명의 건설노동자가 생명을 잃고 10여 명의 노동자가 중경상을 입는 대형참사가 발생했다"며 "고의와 태만, 불법으로 노동자나 시민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기업에 그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안전관리 의무 위반으로 인명사고가 나면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를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조속히 제정해 후진적인 인재 사고가 더는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창원시의회는 "2009년부터 10년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6144건 가운데 1심에서 징역·금고형이 선고된 것은 0.57%에 불과하다"며 "산업재해 사업주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기업의 안전 불감증을 불러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창원시의회 건의문이 경남도의회를 비롯해 전국으로 퍼지길 바란다"며 "5월 임시국회나 9월 정기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입법되길 희망한다. 우리는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성명을 냈다.

이날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실질적 처벌 기준을 높일 수 있도록 대법원에 양형기준 상향 등을 건의하기로 했다. 또 산업안전보건법 외 다른 법을 제정할 것인지 폭넓게 검토하겠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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