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끝날 무렵 배경…자기 집 2층 방에서 소녀 발견…시간 흐르며 조금씩 마음 열어
순수한 아이 눈으로 시대 풍자…지금 어른의 역할 상기시키기도

며칠 전 어린이날이었다. 흔히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라고 한다. 미래 세대인 어린이를 위해 어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영화 <조조 래빗>(감독 타이카 와이티티)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엄마 로지(스칼릿 조핸슨)와 단둘이 사는 10살 소년이다.

히틀러를 가장 친한 친구라 여기는 조조. 꿈에 그리던 독일 소년단에 들어간다. 나치를 위해서 뭐든 다 할 것이라 호언장담했지만 막상 작고 귀여운 토끼를 죽이라는 말에 조조는 망설인다. 결국 토끼를 놓아줘 버린 조조를 동료들은 '겁쟁이 조조 래빗'이라고 놀린다.

의기소침해 있는 그에게 상상친구 '히틀러'가 다가가 용기를 주지만, 불의의 사고로 지울 수 없는 상처만 간직한 채 전역(?)한다.

집으로 돌아온 조조는 2층 죽은 누나 방에서 나는 소리를 수상하게 여긴다. 방을 뒤지던 그는 벽에 있는 비밀의 방을 찾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소녀 엘사(토마신 매켄지)를 발견한다. 유대인인 엘사를 당장 게슈타포(독일 비밀경찰)에 신고해야 하지만 그를 숨겨준 엄마, 그리고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생각하니 판단이 쉽지 않다.

▲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영화 〈조조 래빗〉 속 한 장면. /스틸컷
▲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영화 〈조조 래빗〉 속 한 장면. /스틸컷
▲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영화 〈조조 래빗〉 속 한 장면. /스틸컷
▲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영화 〈조조 래빗〉 속 한 장면. /스틸컷

'히틀러'에게 고민을 털어놔도 뾰족한 수가 없다. 고민 끝에 조조는 엘사를 넘기는 대신 그에게서 유대인 정보를 빼내기로 한다. 그렇게 취조를 핑계로 한 대화를 이어간다. 조조는 얘기를 나눌수록 자신과 다르지 않은 엘사에게 조금씩 마음을 연다. 그러고는 뱃속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듯한 감정을 느낀다.

한편 로지는 언제나 바쁘다. 그렇지만 조조를 끔찍이 사랑하고 있다. 그는 조조와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모든 순간 아이 눈높이에서 유머 섞인 대화를 한다. 그 속에는 아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 애정이 담뿍 담겼다. 평화를 사랑하는 로지는 친구들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다 안타까운 비극을 맞는다.

비슷한 시각 조조 집에 게슈타포가 급습한다. 유대인 엘사는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엄마가 잡힌 마당에 조조는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아이들까지 동원해 인간 폭탄으로 이용한 패전 직전의 나치, 그 처절하다 못해 구질구질한 시절의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는 발랄하다. 순수한 아이의 눈으로 그 시대를 풍자했다.

가령 조조에게만 보이는 히틀러가 있다. 히틀러는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가 직접 연기했다. 히틀러는 조조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지만 우스꽝스럽게 그렸다. 삐치고 떼를 쓰고, 유니콘을 먹는 장면도 나온다. 딱 10살짜리의 상상력이다.

아이들끼리 전쟁 정보를 공유하고 안부를 묻는 장면은 사뭇 진지한데, 그래서 더욱 웃음이 난다.

▲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영화 〈조조 래빗〉 속 한 장면. /스틸컷
▲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영화 〈조조 래빗〉 속 한 장면. /스틸컷
▲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영화 〈조조 래빗〉 속 한 장면. /스틸컷

조조는 아주 자랑스럽게 자신이 나치라고 말한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잔인한 이념, 암울한 정치, 끔찍한 전쟁. 그게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분위기에 휩쓸려 나치에 심취해 있다. 사실 조조는 나치 마크와 군복 입는 걸 좋아하며, 소외당하기 싫어하는 꼬마일 뿐이다.

주목할 것은 로지의 태도다. 로지는 그런 조조의 마음을 헤아리고 '최고의 사령관'이라고 격려한다. 그는 세상 밖으로 나가기를 주저하는 조조에게 문을 열어주되 어느 쪽으로 가라고 등 떠밀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구두끈을 매는 법을 알려준다. 그러고는 인생을 즐기라고 한다.

자연스럽게 시대적 배경이 비슷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떠오른다. 특히 로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도 아들에게 웃음을 줬던 아버지 '귀도'와 닮았다. 어찌면 산다는 건 전쟁의 연속일지 모르겠다. 코로나19 사태 역시 바이러스와 인류의 전쟁이다. 이따금 마주하는 절망 속에서 살아남는 힘은 '희망'이다.

지금 아이들은 앞으로 상상도 못할 수많은 전쟁을 치를 것이다. 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할 일은 '내일은 조금 더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 그리고 내일로 가기 위해 오늘의 구두끈을 꽉 조여매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로지가 그랬던 것처럼, 귀도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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