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놀이 잘하는 끼 있는 청년
큰 궤짝 등 소품 옮겨주다 입문
당시 오광대 전 과장 전수받아
옛 '권위적 교육'탈피하려 노력

이윤석(70) 선생은 춤꾼이다. 1975년 25살 고성오광대에 입문해 현재 약 30명의 패를 이끌고 탈판을 벌이는 우두머리다. 그는 농사꾼이다. 비닐하우스, 논농사, 밭농사를 지으며 반평생을 땅을 일구었다. 그는 농사로 부를 쌓지 못했지만 춤 농사는 대풍(大豊)이다. 고성오광대에 입문할 당시 여덟 명의 예능보유자에게 오광대 전 과장(판소리 마당이나 현대극의 막에 해당)을 전수받았고 고(故) 조용배·허종복 선생 이후 최고의 춤꾼으로 평가받는다.

이 선생은 자연스럽게 고성오광대에 발을 들였다.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던 동네에서 키가 180이 넘고 힘이 좋았던 그는 상여나 큰 궤짝 등 고성오광대 소품을 곧잘 옮겼다. 어른들에게 그는 유용한(?) 심부름꾼이었다. 어른들의 권유로 군에서 제대한 그 해(1975년) 고성오광대에 입문하게 됐다. 이 선생은 '심부름꾼'이라고 표현했지만 어른들의 눈에 그는 소고놀이를 잘하는 끼 있는 청년이었다.

고성오광대는 고성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가면극, 즉 탈춤이다. 가면극은 지역마다 각기 다른 이름을 지니는데 서울·경기는 산대놀이, 황해도는 탈춤, 낙동강 동쪽지역은 야류(야유·野遊), 낙동강 서쪽에서는 오광대(五廣大)라 불린다. 오광대라는 이름은 동·서·남·북·중앙의 다섯 방위(오방)를 상징하는 다섯 광대가 나와서 하는 놀이에서 비롯됐다. 오광대의 큰 특징은 양반에 대한 비난과 풍자가 강하다는 점이다.

▲ 고성오광대 다섯 과장 중 제3과장 비비과장 한 장면.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 다 잡아먹는 괴물 비비가 갖은 횡포로 평민을 괴롭히는 양반을 위협, 조롱한다. /고성오광대보존회
▲ 고성오광대 다섯 과장 중 제3과장 비비과장 한 장면.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 다 잡아먹는 괴물 비비가 갖은 횡포로 평민을 괴롭히는 양반을 위협, 조롱한다. /고성오광대보존회

-경남에는 통영, 고성, 가산오광대가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습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 고성오광대만이 가지는 특징이 있을까요?

"큰 틀에서 오광대는 그 시대의 잘못된 관습을 꼬집으며 바로잡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지역마다 다르죠. 고성은 푸른 바다와 너른 들판이 있어 해산물, 곡류가 그나마 풍족했고 그런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여유가 있었을 겁니다. 탈춤이 춤·연극·노래가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라면 고성오광대는 춤, 특히 몸짓과 표현이 상당히 큽니다. 고성오광대의 신명이 어디있느냐고 물으면 어깨를 위로 올리는 '으쓱'에 있어요. 어른들이 어깨짓이 자잘하면 "야 임마 '으시개'가 약하다, 신명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고성오광대는 신명을 표현하는 '으시개'와 잘못된 관습, 나쁜 것을 물리친다는 '배김새'가 있습니다. 배김새는 우리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을 쳐낸다는 의미인데 불필요한 욕심도 땅 바닥에 내려놓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고성오광대 전수 대사본을 보니 인상적인 말이 있더라고요. '변하지 않기 위하여 먼저 변한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도 노력하고 변화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변화는 정신과 춤사위, 신명이 아니라 환경과 소통의 방법, 교감의 내용입니다. 고성오광대가 끊기는 게 아니라 잘 이어져 가기를 옛 어른들이나 선생님은 바랍니다. 그 마음과 생각은 이어져 나가야겠죠. 옛날에는 선생님이 절대적인 신봉, 하늘이고 배우는 사람들이 불만이 있거나 언짢아도 표출을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적 흐름이 바뀌었어요. 옛날 선생님은 이렇게 고수해왔으니까 이 시대 젊은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해야지라는 생각은 아니죠."

고성오광대는 1974년부터 매년 여름과 겨울 학생들에게 춤을 전수했다. 전수관 건물은 1970년대 초 고성 남산의 작은 슬레이트 집에서 1987년 고성읍 동외리 무형문화전수회관으로, 2012년 현 고성오광대전수교육관으로 이전했다.

이 선생은 1993년 고성오광대보존회 회장으로 취임한 후 교육, 공연, 프로그램을 활발히 했다. 고성오광대를 다녀간 인원도 4만 명에 육박한다. 보존회는 지역, 나이, 국적을 초월해 고성오광대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SNS 홍보, 웹페이지 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 춤 농사는 성공적으로 일궈낸 이윤석 고성오광대보존회 회장.  /김구연 기자 sajin@
▲ 춤 농사는 성공적으로 일궈낸 이윤석 고성오광대보존회 회장. /김구연 기자 sajin@

-이전 인터뷰를 보니 선생님을 '오광대를 목숨처럼 사랑한 인물', '인생을 고스란히 오광대에 털어넣었다'고 하더라고요. 고성오광대를 잘 이끌어왔다는 평이던데요.

"제가 잘 나서 오광대가 잘된 게 아닙니다. 전 돈도 없고 학벌도 중학교 겨우 졸업했습니다. 후배들이 받침이 잘 되어주었죠. 힘든 적이 없었다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이렇게 가다가 식구들 밥도 못 먹이겠다고 생각을 했던 적도 있고 궁여지책으로 한 하우스재배가 바쁘면 이런 일을 계속해야 하나 순간순간 받치는 경우가 있었죠. 돌이켜보면 그래도 순간순간을 잘 넘겼어요. 좌우지간 전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좋은 선생님, 좋은 아내를 만났고 (후배들의)받침이 좋았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고성오광대가 지역민을 구성원으로 하는 데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전국 단위로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또 제도적으로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지역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전통문화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합니다. 국가가 늘 우리의 것, 전통문화가 소중하다고 이야기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고 배울 기회가 있어야 나중에 커서도 전통문화에 참여할 마음이 생기거든요."

고성오광대 = 1964년 12월 24일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됐다. 고성오광대는 삶에 대한 통찰이 있고 동시대를 바라보는 냉철한 민중의식이 들어있다. 제1과장 문둥북춤, 제2과장 오광대놀이, 제3과장 비비과장, 제4과장 승무과장, 제5과장 제밀주과장 등 총 다섯 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둥북춤은 양반의 자손이지만 문둥병에 걸려 고통받는 문둥이가 신명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새 삶을 찾는 내용이 담겼다. 오광대놀이는 마부인 말뚝이가 양반을 조롱하는 대사를 늘어놓으며 양반과 어울려 춤을 추는 과장이다. 비비과장은 세상 무엇이든 다 잡아먹는 괴물 비비가 양반을 위협하며 쌓인 울분을 푸는 마당이다. 승무과장은 기생의 유혹에 빠져 놀아나는 파계승을 풍자하고 제밀주과장은 가부장제에 희생되는 여성에 초점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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