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축하 위해 가족들이 준비
일상 속 감정 솔직하게 녹여내
25일까지 창원 주남아트갤러리

"올망졸망 어린 것이/ 아웅다웅 살다가/ 늘그막의 여유로움// 백화점도 가고/ 여행도 가고/ 영화도 보고/ 맛집도 찾아가고/ 철없는 농담도 하고/ 이만하면 풍요롭지// 이마에 주름 늘면 어떠랴/ 마음은 거꾸로 가는데."('거꾸로 가는 시계' 전문)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인 가운데 창원에서 할머니와 손녀의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주남아트갤러리에서는 지난 18일부터 시화전 '그래, 이만하면 풍요롭지'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칠순을 맞은 김무송 할머니 생신을 축하하고자 가족들이 준비한 선물이기도 하다.

전시에서는 김무송 할머니가 10여 년, 홀로 써내려 온 시에 손녀 조윤정 양 그림이 더해진 시화 작품 20점을 선보인다.

김무송 할머니는 평소 차를 타고 가다, 병실에 누워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시로 녹여냈다. 2017년에는 김해 진영도서관 인문학 과정을 마친 회원들과 함께 시집 <시락국(詩樂局)>을 펴내기도 했다.

김 할머니 시는 누구에게 보여주고자 쓴 게 아닌 생활 속에서 우러나는 감정을 그대로 담아낸 것이라 표현이 솔직하고, 그래서 공감이 간다.

"온종일 방 안에 있으니 딱히 할 일이 없다// 뜨락도 많이 보니 싫다/ 경책도 자꾸 보니 싫증 난다// 36년 전에 구매한 자개농에 붙어 있는/ 황새가 몇 마리 사슴이 몇 마리/ 문 다섯 짝에 붙어 있는 동물들을/ 세어보는 게 낙이 되었다// 한 짝 두 짝 다섯 짝까지 수십 번 세었건만/ 세 짝부터 몇 마리든/ 생명이 없는 너희들만 귀찮게 하제/ 이게 할미의 치매 예방법이란다."('치매 예방법' 전문)

▲ 창원 주남아트갤러리에서는 오는 25일까지 시화전 '그래, 이만하면 풍요롭지'가 열린다. /김해수 기자
▲ 창원 주남아트갤러리에서는 오는 25일까지 시화전 '그래, 이만하면 풍요롭지'가 열린다. /김해수 기자

시에는 할머니가 70년 살아온 세월, 말로 다할 수 없을 외로움과 아픔도 담겨 있다.

김무송 할머니는 전쟁 때 아버지를 잃고 굴곡진 삶을 살아왔다. 결혼해 4남매를 키웠는데 자녀들은 힘겨웠던 지난날의 보상으로 여겨질 만큼 장성했다. 복지관과 노래교실, 봉사활동, 여행을 즐기며 '사는 게 이만하면 됐지'라는 생각이 들 즈음 항암 치료를 받아야 했다.

최근에도 입원을 했다는 김무송 할머니는 건강을 회복하는 중이다. 그는 고된 세월을 지나왔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베풀어주는 친구와 가족이 있어 자신이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나에겐 보배 같은 친구가 있다/ 사는 곳이 달라도 마음이 통하고/ 모습이 달라도 정이 통하는/ 내가 힘들어 하소연할 때는/ 그 넋두리 다 들어주고/ 따뜻한 눈길로 다독여주는/ 보배 같은 친구"('친구' 중에)

"손주가 "할머니 어디예요?"/ "할머니 집이란다"/ "할머니 이젠 병원 안 가도 돼요? 아프지 마세요"/ 예쁜 말을 들으니 금방 다 나은 것 같다/ 손주 말이 명약이네"('담방약' 중에)

김무송 할머니는 "평소 써 둔 졸시로 시화전을 하게 돼 부끄럽지만, 누군가는 견뎌냈을 아픔과 세월, 그 시간을 견디게 해준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시 소감을 전했다.

손녀 조윤정 양은 울산애니원고등학교 2학년으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이번 시화전을 준비하며 할머니가 쓴 시에 담긴 아픔과 그동안의 노력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조 양은 "앞으로도 할머니가 오랜 시간 더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시화전을 준비했다"며 "부족한 그림 실력이지만 전시회를 함께 즐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시를 쓰겠다는 김무송 할머니 시화전은 오는 25일까지 열린다. 문의 주남아트갤러리(055-299-9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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