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는 작가 미상이 대다수
그림 속 의미를 더 중요시 여겨
출세·장수 기원 등 부적 역할
설화·시대상 풍자 담은 그림도

어쩌면 좀 멍청하고 모자란 듯한 모습, 또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어수룩한 자세로 환하게 웃는 호랑이. '호환마마',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게 호랑이요, 천연두 전염병이라는 말이 있는데 호랑이 위신이 말이 아니게 됐다.

백성이라고 불리던 옛사람들은 이런 그림을 좋아했다. 이런 그림이 우리 집에 낀 액운을 물리치고, 좋은 일을 불러오고,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화목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런 그림을 민화라고 한다. 조선 시대 민화는 도화서 화원들이 용돈 벌이로 그려 팔면서 더욱 활발히 유통되기도 했다.

▲ 꽃 중의 왕이라 불리는 모란 병풍. /정현수 기자
▲ 꽃 중의 왕이라 불리는 모란 병풍. /정현수 기자

◇'민화'라는 이름이 붙은 배경 = 민화는 범주가 아주 넓다. 요즘에는 전문 작가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민화를 그리기도 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대부분 작자 미상으로 그려졌다. 산수화나 문인화 등 양반들이 소장하는 그림들은 대개 누구에게 배웠고 어떤 화풍을 띠었는지를 중요시해 화가의 이름이 드러나지만, 백성이 소장하는 민화는 누가 그렸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만 뚜렷하면 되었다. 역사적으로 더 멀리는 고분벽화도 민화에 속한다.

민화라는 말은 일본인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란 사람이 처음 붙였다. 그래서 '겨레그림'으로 바꿔 부르자는 주장도 있다. 민화는 '채색화'로도 불린다. 주로 분채 등 전통 방법으로 물감을 쓰기 때문이다.

◇꿈과 소원, 풍자와 해학 담아 = 민화의 큰 특징은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백성들의 풍습이 그대로 반영되어 느끼는 익숙함 또는 친숙함이 그림에 드러난다. 민화는 그러한 속성 때문에 규방에 걸리기도 했고 사랑방에도 걸렸고 또한 주막집 봉놋방에도 걸렸다. 일상이 그림이 되었고 그림이 일상이 된 삶 속에 민화가 있었다.

동시대에 함께 그려져 공유되었던 수묵산수화와 달리 민화는 오방색(황·청·백·적·흑)을 주로 사용한 까닭에 색감이 선명하다. 이는 백성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고자 하는 소원과 굶지 않고 풍요롭게 살고자 하는 염원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옛사람들이 어린아이에게 오방색으로 지어진 때때옷 고까옷을 입혔던 이유도 같다.

그래서 민화에는 액운을 물리치는 벽사 그림, 부부의 사랑, 가족의 화목, 자녀 다산, 출세, 장수 기원 등 길상의 그림이 많다. 이뿐만 아니라 설화나 중국과 조선의 소설 장면을 묘사한 고사도 역시 많이 그려졌다. 다양한 민화 중에는 은근히 당대의 시대상을 풍자한 내용이 담긴 것도 있고 보면 웃음이 절로 나는 해학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도 있다.

◇어떤 민화가 있을까 = 민화는 감상용이라기보다 무속의 부적과 같은 목적성이 분명해서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소비되었다.

▲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작호도.
▲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작호도.

△작호도: 궁궐에서 사대부 여염집까지 새해 정초에 잡귀를 막는 목적으로 주로 대문에 붙였던 문배그림. 소나무는 새해가 시작되는 정월, 까치는 좋은 소식을 상징, 호랑이는 삿된 일을 막아준다는 벽사의 의미를 띤다.

△봉황도: 봉황은 수컷을 봉, 암컷을 황이라 하는데 오동나무와 대나무 등과 함께 그려진다. 봉황은 오동나무 아래에만 깃들고 삼천 년에 한 번 열린다는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봉황은 군왕을 상징하고 부부의 사랑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수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 즉 영수를 그린 그림으로 주로 길상의 의미가 있다. 민화의 주제로 등장하는 영수는 기린, 신구, 해태 등이다. 기린은 땅 짐승의 왕으로 성군이 나타나 태평성대를 이룰 길조이며 신구는 장수의 상징. 해태는 물에 사는 짐승으로 불을 막아주고 불의를 물리치는 존재로 여겨졌다.

▲ 다산과 화합을 상징하는 어해도. /정현수 자
▲ 다산과 화합을 상징하는 어해도. /정현수 자

△어해도: 어해도는 고기 어 자에, 게 해 자에서 온 이름. 물고기와 게, 새우, 조개 등 수중생물이 그려졌다. 물고기는 알을 많이 낳기 때문에 다산을, 게와 조개는 화합을, 새우는 백년해로를 상징한다.

△십장생도: 달·해·돌·물·구름·사슴·거북·학·소나무·불노초 등 장수의 상징인 것들을 한 화면에 배치해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이다. 주로 회갑 잔치에 병풍으로 장식된다.

△화조도: 화조도는 민화 중 가장 많이 그려진 그림으로 선조들의 꽃과 새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다. 화조도에 등장하는 새는 부부의 사랑을 상징하며 한 쌍으로 그려지는 게 특징이다. 화조도는 주로 아녀자의 방이나 신혼부부의 방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화조도에서 한 쌍의 원앙은 부부 금실을, 팔가조는 효를, 그리고 올빼미는 도둑을 막아준다는 의미가 있다.

△모란도: 모란은 꽃 중의 왕으로 불릴 만큼 화려하지만 벌과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는다. 이는 선덕여왕의 영민함을 보여준 세 가지 일화인 지기삼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되며 부귀와 영화를 상징한다. 모란도는 주로 8폭 10폭 병풍으로 제작되어 혼례 등에 사용되었다.

△고사도: 교훈을 담은 그림. 고사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본받을 만한 인물에 관한 에피소드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그린 작품. 삼국지연의도나 구운몽도 등의 작품을 살펴보면 당시 누가 보아도 그려진 인물이 누구며 어떠한 장면을 담고 있는지 알기 쉽게 특징을 잘 살려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선조들은 그런 그림을 가까이에 두고 그 주인공의 삶을 닮아가기를 소망했다.

▲ 학문의 자세를 일깨우는 목적과 은근히 집 안 자랑을 하려 그려진 책가도. /정현수 기자
▲ 학문의 자세를 일깨우는 목적과 은근히 집 안 자랑을 하려 그려진 책가도. /정현수 기자

△책가도와 문자도: 주로 선비의 방에 장식되어 학문의 자세를 일깨우는 데 사용되었다. 중국에서 기물 위주로 그려졌다는 다보각경(장식장에 귀한 물건을 진열해놓고 그린 것)이 조선에 유입된 뒤 책거리도, 책가도가 유행했고 문자도는 주로 '효·제·충·신·예·의·염·치'라는 글자를 중심으로 조선의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성심을 다하라는 뜻에서 자녀 방에 걸렸다.

이 외에 금강산도와 같은 산수화가 민화로 그려지기도 했는데 자세히 보면 지도처럼 봉우리 이름과 사찰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 풍속도는 당시의 생활상을 묘사한 것으로 베짜고 농사짓는 모습,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일생, 사냥하는 장면, 사시사철 풍습을 그린 세시풍속도 등이 있다.

민화는 질곡의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삶을 위로하고 긍정의 힘을 얻게 하는 활력소이자 자양분이었다.

참고 자료 △<우리문화재> 2019년 3월호, 창원역사민속관 '오색빛깔 조선민화전(2018년 3월), 민화-아름다운 사람들 회원전(2015년 12월 성산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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