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제대로 나야 대궁이 실해져
국민들도 위기 잘 견디고 이겨내리라

미나리 농사를 지은 지 2년째다. 봄, 가을 두 번 수확을 하니 벌써 네 번의 농사를 짓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로 나라는 물론 온 세계가 난리를 치르고 있고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하필 미나리 농사를 꺼내는 것은 세상살이의 이치가 오롯이 담겨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미나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즐겨 먹는 것이다. 집집이 미나리를 재배했는데 중국 사신의 눈에도 그것이 신기하게 보일 정도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미나리 농사꾼의 허풍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나리를 이토록 가까이 두고 재배해 먹게 된 까닭을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그 특유의 향미가 우리네 입맛을 돋우고 물만 있으면 아무 데나 잘 자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추운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봄기운을 가장 먼저 느껴 대궁이(대)를 쭉쭉 뽑아 올리니 선비의 기상을 닮았다 하여 종묘제례에도 올릴 정도로 대접을 받았다.

미나리는 추운 겨울을 제대로 나야 대궁이가 실하게 올라온다. 올해 미나리 작황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고 하는데, 농부들은 경험으로 그 원인이 너무 따뜻했던 지난겨울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초보 농사꾼도 지난가을 그것을 체험했다. 가을 미나리는 여름이 지날 무렵 모종을 거두어 저온창고에 저장해 두었다 뿌린다. 그런데 저온창고에서 너무 빨리 꺼내는 바람에 대궁이가 올라오지 않아서 전혀 수확하지 못했다. 실컷 잘 자라고서는 대궁이가 올라오지 않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따로 없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올봄 미나리 농사를 준비하면서는 각오를 단단히 했다. 실패가 두렵기도 했지만 잘 지은 농사의 쾌감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첫해 농사에서 살짝 맛보기를 했던 터라 거름을 넉넉하게 뿌리는 수고쯤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라는 것이 모든 농작물에 해당한다지만 기특하게도 미나리는 유독 그랬던 모양이다. 올해 농사는 부지런히 부산을 떨었더니 초보 농사꾼의 작황으로는 상상 이상으로 잘 자라 주었다.

코로나19가 덮치는 바람에 가격 폭락을 겪는 등 시름이 깊지만, 제값을 못 받는 것이 미나리뿐이랴. 하지만 가장 위안이 되는 것은 잘 자라 듬실한 것들을 세척하면서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가장 든든한 농사는 자식 농사라지만 농사 본래의 맛을 만끽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았다. 이래서 농사도 지을 만하고 힘들어도 점점 농사꾼이 되어가는 걸 스스로 알게 되었다.

거기에다 올해 처음으로 친구들 도움으로 시작한 직거래에서 소비자들이 맛있게 먹었으며 힘내라는 격려를 보내주니 밤늦게까지 하는 작업이 고단해도 느껴지는 피로도는 훨씬 견딜 만한 것이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온 국민이 힘들게 살고 있다. 총선이 지척이지만 아직 정치는 갈팡질팡 국민을 실망케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위기에 새삼 느끼는 것은 우리 국민이 다른 나라 국민과 다르게 의연하고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병처럼 정부는 좀 모자라도 국민이 똑똑하니 이번에도 잘 견뎌내고 이겨낼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미나리는 겨울이 추울수록 봄에 더 튼튼한 대궁이를 내밀어 봄의 진미를 전해준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미나리를 좋아한 까닭도 험하고 모진 역사를 이겨 낸 것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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