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서 겪었을 법한 소재 엮어
내 이야기같이 공감 가는 시집

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이해가 되는 시와 이해가 되지 않는 시다. 이해가 되는 시가 있다면 독자는 시인이 그 시를 쓸 때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것이란다. 최석균 시집 <유리창 한 장의 햇살>(천년의시작, 2019년 8월)에는 유달리 그런 비슷한 것들이 많았다. 하여 가만히 그의 시를 읽으며 나의 풍경을 떠올렸다.

"유리창 한 장으로 들어온 햇살이 바닥에 앉았다. 환한 자리에 발을 담가본다. 손을 적셔본다. 따뜻하다." ('유리창 한 장의 햇살' 중에서)

"겨울 산에 들면/ 안 보이던 풍경이 보인다." ('눈뜨면 보이는 길' 중에서)

"비 갠 아침/ 마당 빨랫줄 물방울들/ 몸이 단다 부화를 기다리는 알 같다" ('떨어지는 순간의 완벽' 중에서)

시집에는 가까운 일상 속에서 꺼낸 듯한 시가 많다. 어디선가 한 번쯤 봤던 사물이나 풍경이고, 한 번쯤 겪었던 일들이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무심한 사물들이겠지만, 시인에게는 그 사물 하나하나가 저마다 온 생을 바쳐 다가오는 것들이었다.

▲ 〈유리창 한 장의 햇살〉최석균 지음
▲ 〈유리창 한 장의 햇살〉최석균 지음

"초파리인지 모기인지 난데없다/ 출처를 찾아 따라가 보니/ 수입 포도 봉지, 양파 보관 박스에서/ 비행 물체들이 솟는다.// 쉰내, 썩은 내를 타고 오르는 무명의 펄럭거림/ 몇 겁의 파도와 능선을 넘었느냐/ 신천지에의 꿈이 시공을 뚫고/ 반복된 몸의 일부가 비행을 완성했으리라" ('비행 일기' 중에서)

"신호등 앞에서 비롯된 일이다/ 눈 밝은 바람이/ 차창 틈으로 나뭇잎 한 장을 건네고 갔다// 파란만장 갈림길과/ 절벽을 마주했던 마음 빛이 선명했다" ('붉은 신호' 중에서)

"차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는 듯/ 덩달아 편승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발로 날개로 수다를 떤다// 초고속으로 도시화된 시골 파리와의 동행"('파리 목숨' 중에서)

무릇 삶이란 전력을 다하는 일이다. 밑동이 꺾여 쓰러진 나무에서도 봄날 새 잎이 돋아난다. 기적이나 경이가 아니라 그런 게 삶이다.

온 힘을 다해 써 내리는 엽서 한 장(붉은 신호)처럼 떨어져 일월에 산화하는 송화처럼, 오솔길에 흐르던 피는 물에 녹고, 산야를 물들이던 사랑은 바람에 흩어져 버리거나(소나무 무덤), 허물을 벗기 위해 암흑을 빨며(비행 일기) 기다렸지만 결국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자기 귀 만한 코뚜레를 차는(고귀한 귀고리) 신세가 되더라도 뿔보다 깊이 각인된 생의 무게(고귀한 귀고리)를 전력을 다해 살아낼 뿐이다. 그래서 결국 미생은 없다. 돌 하나, 먼지 하나가 완생(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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