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3만 8000원짜리 옷 한 벌을 구매하기 위해 재질부터 사이즈, 리뷰까지 꼼꼼하게 살피느라 한 시간이나 걸렸다. 큰맘 먹고 구매하는 가방이나 소형 가전제품이었다면 며칠을 고민하며 답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점심 메뉴 하나를 결정하는 데에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하지만 우리는 인식하지 못한 채 4700만 원의 가치를 지닌 무언가를 충동적으로 결정하곤 한다. 바로 '한 표'다.

2020년 우리나라 예산은 512조 3000억 원으로, 제21대 국회의원 당선인 300명이 앞으로 4년 동안 심의·의결하는 재정 규모는 2048조 2000억 원에 달한다. 이를 전체 유권자 수로 나눠 한 표의 가치로 산출한다면 약 4700만 원이 된다. 게다가 국회의원은 예산 운용뿐만 아니라 국가의 크고 작은 일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 한 표의 가치는 더 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비싼 한 표를 결정하려면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것이 매니페스토 정책선거가 중요한 이유다.

매니페스토란 선거에 임하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유권자에게 제시하는 계약으로서, 구체적인 목표, 추진 우선순위, 이행 방법, 이행 기간, 재원 조달 방안을 명시한 공약을 말한다. 유권자는 공약을 비교해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공약을 제시한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투표한다.

하지만 선거관리위원회 노력보다 중요한 건 유권자의 관심이다. 정치인은 유권자 요구에 가장 귀 기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꼼꼼히 따져보고 정확히 행사하는 것, 이것이 대한민국 정책선거를 이루는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물론 정책에 관심을 기울이려면 정당·후보자 공약을 쉽게 알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유권자 목소리가 정당과 후보자들에게 닿아야 한다. 그 방법으로 선거관리위원회는 정책·공약알리미 사이트에서 정당·후보자 정책을 쉽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유권자의 희망공약 제안 서비스를 통해 시민 목소리가 정책으로 구체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나는 저녁 메뉴를 고르는 대신 우리 지역에 어떤 사회적 이슈가 대두하고 있는지 찾아봤다. 옷 한 벌을 구매하는 대신 내가 원하는 공약을 제시한 후보자를 찾으려 시간을 보냈다. 우리의 미래를 바꿀 값진 한 표를 결정하기 위해 오늘부터 깊은 고민이 시작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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