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여러 전염병 겪으며 강해진 면역력
의료발전·봉건제 몰락 등 사회도 발전해

서적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1500년대 유럽이 신대륙을 비롯한 전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강력한 쇠무기·총기·말·갑옷·항해술을 꼽고 있지만 '전염병'을 빼놓지 않는다. 천연두·홍역 등 유럽 고유의 전염병은 다른 대륙의 많은 민족을 거의 몰살함으로써 유럽인들의 정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는 세균과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은 어떠한 첨단무기보다 강력하다. 유사 이래 단 3주를 빼고 끊임없이 전쟁을 이어왔다고 하지만, 전쟁에서 전사한 사람보다 세균과 바이러스에 희생된 사람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천연두·인플루엔자·결핵·말라리아·페스트·홍역·콜레라 같은 여러 전염병은 인류의 근대사에서 주요한 사망 원인이었다.

이들 전염병은 동물의 질병에서 진화한 것이 대부분이다. 인간이 수렵·채집 생활을 그만두고 정착형 농경 생활을 시작하면서 소·돼지·닭·오리와 같은 동물을 가축화하였다. 그 과정에서 가축의 질병은 자연 선택적으로 인간의 질병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천연두·홍역·결핵은 소에서, 인플루엔자는 돼지와 오리 등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은 가축으로부터 노동력과 단백질을 얻는 대신에 많은 생명을 동물의 질병에 내어주어야 했다. 그래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가축의 치명적 대가로 세균이라는 사악한 선물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치명적인 전염병에도 인류가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면역력'이라는 방어체계 때문이다. 긴 세월 동안 수많은 희생을 통해서 인류는 아주 조금씩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 왔다. 그리고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과학기술 발전과 함께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보건위생·방역에 관한 과학기술적 지식이 쌓이고, 백신·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인류는 인공적·후천적 면역력을 둘 수 있었다. 또한 많은 전염병을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었으며, 심지어 2000년 넘게 인간을 괴롭혔던 천연두를 종식하기까지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오늘날, 시간은 걸리겠지만 과학기술은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을 만들어 낼 것이고 극복할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 인류에게 상실과 절망의 후유증만을 남기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 14세기 페스트 대유행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하였지만, 봉건제도 몰락이라는 대변혁을 가져왔고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19세기 영국의 콜레라는 상하수도에 대한 시설정비, 수돗물 여과, 공중위생 등 도시환경 대개조의 계기가 되었다. 또한, 20세기 접어들어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간 스페인독감은 제1차 세계대전을 빨리 끝내고 평화조약의 길로 인도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코로나19 사태는 현 인류의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한층 더 성숙하고 발전적인 제도와 협력을 끌어낼 것이다. 의료 및 방역체계뿐만 아니라, 시민 의식, 글로벌 협력체계, 개방적 소통 등에서 발전적인 변혁을 가져올 것이다.

'신체적 면역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면역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많은 희생이 예상되지만, 사악한 세균들이 오히려 인류의 삶을 더 건전하고 건강하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먼 미래에 인류에게 다가올 또 다른 위협(미확인 생명체, 인간의 탐욕, 미지의 병원균)을 물리칠 수 있는 전 지구적 방어체계를 재정비하고 구축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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