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 우울증·죄책감·좌절감 심화에 사회적 관심 필요
활동지원센터 "문 두드려달라"…아이·부모 위해 재개관

"마스크 쓰고 밖에서 뛰노는 애들을 보고 있으면, 집에만 있어야 하는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흔들렸다. 엄마를 찾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박 모(40·산청군) 씨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는 아이가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안 뒤부터,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했다. 어쩌면 자신의 잘못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집안일을 하며 잡생각을 떨치곤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뒤부터 우울감이 더 자주 찾아왔다. 종일 집에서 답답해하는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서다.

그의 아이는 바깥구경을 좋아하는 활동적인 성격이다. 평소 박 씨는 학교를 다녀온 아들과 매일 산책을 나갔다. 7살 비장애 아동인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첫째 아들을 챙길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초등학교도 어린이집도 문을 닫은 상황에서 일상은 무너졌다. 밖으로 가고 싶은 첫째, 집에 있고 싶은 둘째 사이에서 지치는 날이 이어졌다. 몸이 버티지 못하니 산책하는 날은 점점 줄어들었다.

자연히 아이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늦잠을 자고, 수시로 간식을 먹으니 살도 쪘다. 밖으로 나가자고 짜증을 내는 일도 잦았다. 발달장애아동은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회에 녹아드는 데 필요한 습관을 만들어야 하는 까닭이다.

생활 습관이 무너진 아이 곁에서 박 씨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하지만 개학 때까지는 스스로 돌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는 "주변에서 긴급돌봄을 신청해보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다"면서도 "장애를 가진 아이마다 특성이 다른데 내 아이를 잘 모르는 돌봄선생님에게 아이를 맡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경남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도내 초등학교에서 운영하는 긴급돌봄 교실은 비장애아동·장애아동을 통합해 운영 중이다. 교내 특수교육실무원 일부가 돌봄에 참여하고 있다지만 박 씨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 24일 오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마산장애인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개나리가 활짝 핀 거리를 걷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24일 오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마산장애인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개나리가 활짝 핀 거리를 걷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저조한 특수학교 긴급돌봄 이용률 = 도내 특수학교 10곳 중 8곳은 오는 4월 3일까지 긴급돌봄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이용률은 높지 않다. 현재 재학생 총 1676명 중 56명이 긴급돌봄을 이용하고 있다.

여러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종일 아이를 돌봐야 하는 고단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긴급돌봄에 참여하지 않는 대표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자녀를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아서다. 둘째, 특수학교와의 거리가 멀어 통학이 불가능한 경우다. 도내 특수학교가 있는 시군은 창원·김해·진주·거제·통영·양산·의령 7곳밖에 없다. 나머지 11개 시군에서 활동보조사나 스쿨버스 없이 자녀를 통학시키는데는 어려움이 크다. 특히 일을 하고 있는 부모라면 불가능에 가깝다.

통영에서 자폐아동을 키우는 구모(45·통영 용남면) 씨는 "활동보조사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두 달 전에 신청했는데 최근에 겨우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활동보조사 구하기가 어려워진 이유 중 하나는 상당수 인력이 발달장애아동 학부모이기 때문이다. 도미진 한국장애인부모회 창원마산지회장은 "발달장애 부모들은 스스로가 활동보조의 프로라고 할 수 있다. 평소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 활동보조사로 일하러 나가는 분들이 많은데 지금은 발이 묶여 있는 셈이다"라고 전했다.

◇휴관 압박받는 활동지원센터 = 이런 부모들이 기댈 언덕은 각종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애인가족지원센터·주간활동서비스센터 등 복지시설들이다. 가깝다는 이점도 있지만 정서적으로도 친근하다. 각 지역 장애인부모회가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도 지회장 역시 발달장애 자녀 이 모(12) 양을 센터에 맡긴다. 센터에서는 사회복지사·치료사 등 특수돌봄 전문가들이 안전하게 아이들을 돌본다. 날씨가 좋으면 산책도 매일 나간다. 아이와 부모들의 만족도가 높지만 수용인원은 전체에 비하면 극히 소수다.

게다가 도내 가족지원센터들은 다른 시설들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휴관 권고를 받았다. 실제 2~3주 휴관하기도 했지만 계속 문을 닫으면 공들여 뽑은 돌봄인력을 보낼 수밖에 없는 사정이다. 또 아이를 맡길 곳 없는 부모들의 처지를 보다 못해 최근 많은 곳들이 다시 문을 열었다.

지금도 대부분의 발달장애아동 부모들은 아이와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조중금 느티나무장애인부모회 통영지회장은 "발달장애아동 부모들은 평소에도 우울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제주도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사건도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좌절감이 원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분들은 꼭 활동지원이 아니더라도 센터 문을 두드려 주시면 좋겠다"며 "코로나19로 드러난 한국사회의 그늘에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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