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창동 금강미술관서 기획초대전
순수미술 작가 6명 뜻 모아 31일까지
당시 함성 저항 희망 강렬하게 재현
개인 창작세계 기반 3.15의거 재해석
코로나19라는 블랙홀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존재한다. 지금 우리를 있게 한 그날의 분노, 그날의 아픔, 그날의 함성들이다. 3·15의거를 기억하는 작가 6명이 60주년을 맞아 자발적으로 뭉쳤다. 창원 금강미술관에서는 오는 31일까지 3·15의거 60주년 기념 특별기획 초대전 '기억하자! 그날을…' 전시를 연다. 박춘성, 강종열, 공태연, 김태희, 이경희, 송해주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각자 창작 세계를 기반으로 한 신작을 내놨다. 대부분 순수미술 작업을 해온 작가들이라는 점이 더욱 눈길을 끈다. 이들은 이번 전시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박춘성 = 경남 원로 작가 박춘성 화백은 역사의 산 증인이다. 그는 주로 50~60년대 농어촌 마을을 그린다. 1960년 당시 마산고등학교 졸업생이었던 박 화백은 재학생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그의 작품 '부정선거 규탄 시위'는 박 화백의 생생한 증언이다. 3월 15일 부정선거에 반발해 1차 시위가 발생했다. 이후 4월 11일 1차 의거 때 사라진 학생 김주열 시체가 마산 중앙부두에서 발견된다. 작품은 분개한 학생들이 4월 12일 마산시청에 몰려가 2차 시위를 벌이며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다.
작품 속 학생들 모자에는 마산고, 마산상고, 창신고, 마산공고 마크가 새겨져 있다. 박춘성 화백은 "그간 작가들이 3·15의거를 제대로 조명하지 못했는데, 60주년을 기념해 억눌려 있던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했다"며 "3·15의거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고, 작품을 본 젊은 사람들이 과거 시민들이 분노하고 함성을 지르던 모습을 기억하고 정신을 잘 지켜나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강종열 = '동백꽃'으로 유명한 여수 대표 원로 작가 강종열 화백도 동참했다. 여수와 마산. 지리적으로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강 화백 역시 격동의 동시대를 살았다. 3년 전부터 민족사 비극적 사건으로 꼽히는 여수·순천 사건을 주제로 한 작품을 그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하나의 촛불이 되어'와 '오~~ 내 아들아'를 선보인다. '하나의 촛불이 되어'는 마산 앞바다에 떠있는 김주열 열사가 촛불로 환생하는 이미지를 구현했다. 3·15의거라는 사건이 한국 민주주의 첫발을 내딛는 시발점이 돼 촛불혁명까지 이어졌다는 내용을 표현했다.
'오~~ 내 아들아'는 공포와 어둠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아들의 시체를 끌어안은 엄마 모습을 처절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강종열 화백은 "마산에서 일어난 3·15의거에 대해 전 국민이 생각해봐야 할 시기가 왔다"며 "이번 전시는 더 많은 국민에게 3·15의거를 알리고, 역사의 아픔을 되새기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희 = 3·15의거 이듬해에 태어난 김태희 작가는 이번 전시를 기획한 주인공이다. 태어난 곳은 고성이지만 마산에서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3·15의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 세대다. 그는 "지난해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을 맞아 전시한 것을 보고 3·15의거를 작품으로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시 배경을 설명했다. 여러 작가에게 전시를 제안했으나 고사한 이들이 많았다고.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순수하게 작가들이 모여 만드는 자리라 경제적인 이유가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힘을 보태준 작가들 덕에 전시가 성사됐다. 김태희 작가는 콜라주 작품을 선보인다. '분노의 순간'은 김주열을 처음 보도한 부산일보 허종 기자, 당시 경찰, 시위대 모습 등을 한 작품에 담아냈다. 100호짜리 캔버스 세 개를 이어 붙인 대작으로 3·15의거 전반을 살펴볼 수 있도록 역사적 장면을 한 폭에 담았다. 김 작가는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많은 시민이 전시를 보고 마산의 민주주의와 3·15의거 의미를 떠올려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태연 = 남해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공태연 작가는 자기 색깔을 담은 현대적인 방식으로 3·15의거를 표현했다. 고향이 진해인 공 작가는 마산과 인연이 깊다. 경남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마산 원로 작가들과 교류하며 마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3·15의거를 주제로 한 작품은 많다. 새로운 3·15의거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지만, 공 작가는 과거 이야기를 지금 시선으로 나타내고자 노력했다.
그는 작품 '그날의 이야기' 두 점을 출품했는데, 두 작품 모두 강렬한 붓 터치가 인상적이다. 작가는 그날의 함성과 저항 운동, 희망, 누군가는 고개를 숙이고, 누군가는 나아가는, 역동적인 소리와 공간의 울림을 현대적으로 그려냈다. 공태연 작가는 "3·15의거를 자료만으로 기억한다면 시민들에게 깊이 다가갈 수 없다"면서 "미술작품을 통해 시민들이 쉽고 재미있게 사건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경희 = 이경희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마음이 남달랐다. 이 작가 외삼촌은 독립운동가 박영달 선생이다. 독립운동과 3·15의거 모두 우리에게 아픈 기억이지만, 지금을 있게 한 소중한 역사이기도 하다. 부산에 거주하는 이 작가는 마산지역 작가들과 함께 전시를 여는 등 관계를 이어오다, 참가 제안을 받고 이번 전시에 참여했다.
이경희 작가 작품 '3·15의거 60년 후 어느 날' 속 모습은 3·15의거 기념탑 주변 풍경이다. 작품을 구상하고자 마산 곳곳을 답사하던 그의 눈에 3·15의거 기념탑이 눈에 들어왔다고. 작품에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희망적인 미래 모습을 담았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풍경은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작품 속에는 아이 두 명이 손을 잡고 있다. 옛날을 기억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의 핵심인 두 아이는 이경희 작가 6살, 3살 손자다. 그는 "과거가 있었기에 오늘날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라며 "선열들의 뼈 아픈 과거를 잊지 말고 다시 도약하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해주 = 마산 출신 송해주 작가가 선보인 작품 제목은 '3월의 슬픈 초상 1·2'다. 같은 제목으로 도록에 실린 작가 노트는 한 편의 시다.
'어둠이 내리는 마산의 거리에서/ 민주와 정의를 위해 노래했던/ 청춘들의 꽃잎이 휘날린다// 난무하는 최루탄과 카빈소총의/ 검푸른 서슬 아래/ 슬픈 그림자가 새겨진다// 억압과 부정, 통제의 벽을 넘어/ 핏빛 바다가 출렁이던 그날/ 아 잊지 못할 3월의 청춘이여!'
작품에는 어둠 속 횃불에 비친 그림자가 있다. 3·15의거를 이끈 학생들이다. 그들 앞을 가로막은 색색의 철조망. 철조망 주위로 흩날리는 조각들은 투표용지일 수도, 꽃잎일 수도, 학생들일 수도 있다. 작품 아래에는 핏빛 바다가 흐른다. 그는 "이번 전시 특징은 참여 작가들이 자기 방식으로 3·15의거를 표현했다는 데 있다"며 "무거운 주제이지만 편안하고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