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을 다룬 국내외 현대소설은 많다. 이 중에 정유정의 장편소설 <28>(은행나무, 2013년)과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 <네메시스>(정영목 역, 문학동네, 2015년)를 골랐다. 공포와 혼란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이 여지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폭력이나 혐오로 다른 존재를 밀어내는 일이나 극단적인 죄책감으로 자기 비하에 빠지는 일 모두 나약함이 불러온 결과다. 반면 이런 상황에서도 끝내 의연함을 잃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 소설은 끝내 파국으로 끝난다. 그럼으로써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가 지구에서 사는 방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 <28> 정유정 지음
▲ <28> 정유정 지음

◇빨간 눈 괴질로 궤멸된 도시

소설의 배경은 수도권에 있는 인구 29만의 도시 화영(가상 도시). 어느 날 시민들에게 알 수 없는 괴질이 돌기 시작한다. 감염자 모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기에 일명 빨간 눈 괴질이라 불린다. 감기에 걸린 것처럼 인후통으로 시작되는데, 대부분 3일 안에 사망한다. 괴질은 개에게서 옮겨진 것으로 밝혀진다. 감염자와 사망자가 늘어나자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화영시를 철저히 봉쇄한다. 그러고는 도시 내 모든 개를 대상으로 무자비한 살처분이 이어진다. 총격은 심지어 봉쇄선을 뚫고 도시를 빠져나가려는 시민에게까지 확대된다. 인간까지 살처분이 되는 셈이다.

"요 며칠 군인들은 유기견 소탕이라는 명분으로 개를 향해 총을 쏴댔다. 대로에서 행해진 밤낮 없고 공공연한 발포였다. 살 처분의 일환이자 밤마다 산골짜기에서 울리는 총성의 가림막이기도 했다. 풍문에 의하면, 산골짜기 총성은 야음을 타 화양을 탈출하려는 이들을 향한 것이었다. 며칠 새에 수십 명이 죽어 암매장당했다고 했다. 부풀려진 면이야 있겠지만 이는 사실일 가능성이 컸다." (280쪽)

특히 이 소설에 몰입이 되는 이유는 이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코로나19 사태로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영이란 도시에 우한이 겹치고, 대구가 겹친다. 이제는 유럽까지 포함할 수 있겠다.

정유정 작가는 어느 밤 구제역으로 돼지를 생매장하는 영상을 보고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눈보라 치는 밤, 깊은 구덩이 안에서 죽음을 직감한 돼지 수백 마리가 두려움으로 날뛰고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산 채로 묻힌 그들의 울음소리는 이튿날 아침까지 지상으로 울려 퍼졌다고 했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493쪽)

소설 <28>은 결국, 도대체 우리 인간이 자연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이 만든 작품이다.

▲ <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 <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두려움이 우리를 지배할 때

<28>과 비교해 <네메시스>는 한층 차분한 톤으로 사건이 진행된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미국 어느 도시 안 유대인 구역에서 폴리오 바이러스가 갑자기 퍼지게 되는 이야기다. 폴리오는 '소아마비'로 잘 알려진 전염병이다. 주로 아이들이 많이 걸렸지만, 어른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39세에 이 병에 걸린 후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다. 가장 흔한 증상은 다리가 마비되는 것이었다. 완치가 되더라도 평생 불구로 살아야 했다. 특히 호흡기에 마비가 나타나면 거의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소설에서 폴리오는 잔잔하게, 하지만 착실하게 사람들의 목을 죄어 온다. 1950년대에나 치료약이 나오니 소설 속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다.

학교 체육 교사인 주인공은 학생들이 계속 바이러스에 감염되자 두려움에 빠진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체육관으로 찾아와 운동을 하며 노는 아이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약혼자의 아버지인 의사가 주인공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안도감을 느낀다.

"자네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 때문에 흔들리고 있지만 강한 사람도 흔들리기 마련이야. 자네보다 나이도 많고 질병에 관한 경험도 훨씬 많은 우리 같은 사람들 중 많은 이들도 흔들리고 있다는 걸 자네는 알아야 하네. 의사로서 이 무시무시한 병의 확산을 막지 못한 채 가만히 있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일세. 주로 애들만 공격해서 그 가운데 일부는 죽이기까지 하는 이 위력적인 병, 이건 어떤 어른도 받아들이기 힘든 거야." (109쪽)

감염자가 계속 늘어나자 주인공은 결국 학교를 떠나 산 속 지도교사로 간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폴리오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다. 혹시나 하고 주인공은 진단을 받아보는데 양성 판정이 나온다. 곧 그도 발병해 불구가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바이러스 전파자라는 죄책감에 모든 인연을 멀리하고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린다.

끝까지 불행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소설은 결국 우리에게 두려움과 죄책감을 이겨 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두려움은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어. 두려움은 우리를 타락시켜. 두려움을 줄이는 것, 그게 자네의 일이고 내 일이야." (110쪽)

이처럼 조심은 하되 이성적으로 대처하며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기, 지금 코로나19에 맞서는 우리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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