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경 일본 아카데미 수상 작품
아베 총리 연루 사학비리 모티프
시민 제보로 시작된 추적 '의미'

제목이 '신문기자'인 일본 영화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 정직한 제목이라 썩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 주인공이 한국 배우 심은경이다. 어느 영화에서 어떤 배역을 맡아도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우. 더욱이 이 영화로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인 최초, 최연소,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호기심이 생겼다.

<신문기자(2019)>(감독 후지이 미치히토)는 주인공 신문기자 요시오카 에리카(심은경 분)와 내각정보조사실 공무원 스기하라 다쿠미(마쓰자카 도리 분)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사는 듯한 두 사람이 한 사건을 기점으로 만나면서 이야기는 본 궤도에 오른다.

영화는 저널리즘 영화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익명의 제보를 받은 요시오카가 진실을 파헤치고자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외압으로 취재를 그만두라는 지시를 받아 위기를 겪지만 결정적인 제보자를 만나면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 한국 배우 심은경이 주연을 맡은 영화 <신문기자>의 한 장면.  /스틸컷
▲ 한국 배우 심은경이 주연을 맡은 영화 <신문기자>의 한 장면. /스틸컷

흥미로움은 의외의 포인트에서 만났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일본에서 큰 이슈가 됐다. 현 정권인 아베 총리가 연루된 사학 스캔들을 모티프로 한 데다 가짜 뉴스, 댓글 조작, 미투 등을 다뤄 관심을 모았다.

항간에서는 주인공인 신문기자에 한국 배우를 캐스팅한 것은 일본 배우들이 모두 고사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이 부분은 감독이 처음부터 심은경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다른 배우에게 배역을 제안한 적이 없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정말 일본 상황이 저럴까? 요즘 같은 시대에?'라는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따라가던 중 영화 막바지 스기하라의 상사 대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나라 민주주의는 형태만 갖추면 돼."

과거 한 고위 관료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중은 개돼지'라 발언한 일이 오버랩됐다. 고작 4년 전이다. '요즘 같은 시대' 이전에 비선 실세가 존재하고, 정부가 댓글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여론을 조작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민간인을 사찰하고, 필요할 땐 사찰한 내용을 흘려 입을 막아버리는 일이 실제 벌어지던 때다.

영화는 언뜻 언론의 역할, 자세를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영화 속 언론인은 일본인 아버지에, 어머니는 한국인이고 미국에서 자란, 일본 사회에서는 별종 같은 기자다. 다른 일본인 기자들은 진실 앞에 머뭇거리거나,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 한국 배우 심은경이 주연을 맡은 영화 <신문기자>의 한 장면.  /스틸컷
▲ 한국 배우 심은경이 주연을 맡은 영화 <신문기자>의 한 장면. /스틸컷

그러나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은 역시 일본 사회에 익숙한, 누구보다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온 일본인이다. 이들이 익명 제보자, 결정적인 제보자가 되어 진실을 알리는 기폭제가 된다. 제목에서 가진 편견을 버리고 영화를 들여다 보면 결국 깨어있는 시민에 대한 얘기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다소 충격적이다. 열린 결말의 힌트를 감독이 직접 전했다. 마지막에 나온 엔딩크레디트 음악까지 들어보라고 하니, 참고하면 좋겠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정부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하고, 잘한 일에는 박수도 보내며 시민이 주체가 되는 '진짜 민주주의'만이 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껍데기 민주주의는 가라'며 지난 2016년 광장에 나가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촛불을 들었던 때를 기억한다면 <신문기자>에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시민의 대표를 뽑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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